"한국은 과거 일본의 경제발전 모델을 따라왔다. 그 결과 구조적인 면에서 한국은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한국의 경우 최근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등 과거 일본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며 일자리가 줄어들고,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등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도 자칫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불황과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부터라도 일본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연구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대외주도형 발전모델을 따라온 만큼 문제점 역시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현 단계에서 한국이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간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고령화 등 최근 한국 경제구조 변화에서 일본이 안고 있었던 문제점과 위험요인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 성장률 하락과 투자·소비 부진 등은 일본 역시 오랜기간 겪었던 어려움이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청와대 경제개혁기획단 종합반장, 재정경제부 장관 자문관 등을 역임하고 2011년부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하기도 한 국제·거시경제 전문가다.
특히 일본 동경에 위치한 ADB 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하며 아베노믹스를 통한 일본의 위기극복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아베노믹스, 1차적 성공"
박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금융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이라는 3개의 화살중 첫번째 양적, 질적 금융완화 정책은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장 지표가 개선되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도 플러스가 개선되는 등 일본 경제에 활력을 줬다는 설명이다.
과거 일본 정부가 추진했던 재정·통화 정책에 대해선 "재정의 경우 효율적인 부분에 투입되지 않았고, 선심성이나 낭비성 정책에 사용됐다"며 "경기부양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냥 돈만 풀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효율적 재정집행에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보장지출이 급증하면서 결국 국가재정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정책 역시 뚜렷한 정책목표나 방향없이 왔다 갔다 했다"며 "반면 아베노믹스는 정해진 방향으로 무자비하게 돈을 풀며 과거와 차원이 다른 정책이 구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퍼져있던 디플레이션 심리를 돌려놨다는 측면에서 아베노믹스는 현재까지 1차적 성공, 일시적 성공 정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 일본의 문제점은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어려움"이라며 "모든 문제를 유동성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완화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지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제 자체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20년간 장기침체 국면에 있었다"며 "몇가지 정책으로 2~3년내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3번째 화살로 불리는 성장전략이 어떻게 구사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 경기부양 수단 아니다"
엔화 약세에 대해 박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정부의 경우 엔화 약세가 목표가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강하다"며 "물론 수출기업들이 환율 영향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수입물가 상승 등 피해를 보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화학 등 한국과 경쟁하는 분야는 엔화 약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장기침체를 겪으며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한 기업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엔화 약세로 일본 경기가 살아났다는 것은 단순한 논리"라고 덧붙였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아베노믹스는 적정수준의 인플레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 과정에서 명목소득이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전망했다.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명목소득이 정체될 경우 결국 실질소득 감소를 불러 소비부진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산업과 관련해선 "과거에는 이른바 좀비기업들이 많아지다 보니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기업들에게 자금공급이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이어 "하지만 일본 은행들도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했고, 동남아지역과 같은 시장에 진출해 최근 전체이익의 30% 가량을 해외에서 내는 등 변화하고 있다"며 "우리 금융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인상, 중국의 금융시장 불안 등의 변수가 생기고 있지만 일본의 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앞만 보고 가야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출구전략을 논의하고 있지만 일본 경제는 아직 그런 얘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국 역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외환위기와 달리 지금은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대부분 국민들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며 "하지만 한국의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일시적 요인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효율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구조개혁과 관련 "우선순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노동개혁은 물론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을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 과정에서 정치적 리더십과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버텨왔지만 한국은 그럴만한 체력과 시간이 없다"며 "일본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계속 연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오는 9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국제경제 세미나 '위기의 한국경제,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에 참석한다.
비즈니스워치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코트라(KOTRA)가 후원하는 이번 세미나에는 최고의 일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ADB(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나오유키 요시노(Naoyuki Yoshino) 소장이 '아베노믹스와 일본경제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한다. 도시히로 이호리(Toshihiro Ihori)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GRIPS) 교수는 '고령화가 일본 경제에 미친 충격'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나오유키 요시노 소장은 미국 뉴욕주립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를 지냈고, 현재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일본 금융청 금융연구센터 선임자문관, 일본 재무설계표준위원회(FPSB) 회장 등을 역임했다. 도시히로 이호리 교수는 도쿄대학 경제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일본 경제학회장과 재무학회장 등을 거친 저명 학자로 고령화 이슈에 정통하다.
실물경제 분야에서는 정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일본지역본부장이 '일본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와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시사점과 한국 산업계 대응'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다.
주제 발표자들과의 패널 토론에서는 박재하 선임연구위원이 모더레이터로 진행을 맡게 된다. 세미나는 무료로 진행되며, 자세한 사항은 비즈니스워치 홈페이지(http://www.bizwatch.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가신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하며 자세한 사항은 세미나 사무국(02-783-3311)로 문의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