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다. 르노삼성의 SM6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대·기아차 일색이던 국내 중형차 시장에 SM6의 등장은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SM6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역시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르노삼성 입장에서는 SM6의 승승장구가 반갑다. 오랜 기간 암흑의 시기를 거쳤던 만큼 현 상황은 분명 호재다. 문제는 SM6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SM6가 언제까지 신차일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SM6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SM6의 몰락이 곧 르노삼성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왜 인기인가
르노삼성은 그동안 SM5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SM5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SM5의 몰락은 곧 르노삼성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모델 노후화는 심화됐고 단조로운 라인업에 소비자들은 외면했다. 늘 똑같은 라인업에 연식만 바뀌어 출시되는 르노삼성의 차량에 식상해 했다.
반전을 노리던 르노삼성은 올해 3월 마침내 신차를 출시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국내 시장에서 '고사(枯死)' 위기에 처해있던 르노삼성으로서는 SM6의 도입이 절실했다. 르노삼성에게 SM6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던 셈이다. 당시 르노삼성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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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볼 점은 르노삼성이 왜 SM6라는 '중형차'를 지목했느냐다. 국내 중형차 시장은 현대차의 쏘나타와 기아차의 K5가 양분하는 시장이다. 두 모델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는 만큼 공고한 진입장벽을 갖춘 시장이다. 이런 시장을 굳이 뚫으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르노삼성은 공고한 진입 장벽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으로 봤다. 오랜 기간 두 모델만이 독식하던 시장이라는 것은 역으로 소비자들이 이미 식상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선택지가 모자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는 것이 르노삼성의 공략 포인트였다.
이런 측면에서 SM6의 등장은 소비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을 만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물론, 모델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는 쏘나타와 K5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치밀하게 준비했다. 주력트림의 가격을 3000만원 미만으로 잡았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선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 중형차 시장 강자로 '우뚝'
르노삼성의 '절치부심'은 곧 판매량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출시 이후 SM6의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다.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간 누적 판매량은 4만176대를 기록했다. 매월 평균 5700여 대씩 판매한 셈이다.
SM6의 이같은 실적은 현재 국내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선방한 실적이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신차 출시 이후 3개월 가량은 판매가 증가하는 것으로 본다. 이른바 '신차 효과'다. SM6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여타 다른 신차들과는 패턴이 다르다.
SM6는 출시 첫 3개월간은 여타 신차들과 마찬가지로 월 평균 6615대를 판매했다. 신차의 히트 여부를 알수 있는 부분은 첫 3개월 이후 판매량이다. 히트작들은 첫 3개월 이후에도 꾸준히 판매량을 일정 부분 이어간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급격하게 판매량이 감소한다.
SM6의 경우 흥행 몰이의 가능성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첫 3개월 이후인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월 평균 판매량은 5082대다. 첫 3개월 평균 판매량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쏘나타와 K5에 식상해했던 소비자들이 대거 SM6에 몰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SM6의 돌풍은 현대·기아차에게도 이젠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용도별 차량 등록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SM6의 자가용 등록대수는 3만6469대를 기록했다. 쏘나타와 K5의 판매대수에는 택시 등 자가용 이외 용도 차량의 판매량이 포함돼있다.
따라서 자가용 등록대수는 순수하게 해당 차량이 얼마나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SM6는 같은 기간 2만7244대를 기록한 쏘나타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 2014년 출시된 LF쏘나타의 경우 신차임에도 불구 판매량이 저조했다. 이에 현대차는 결국 택시 모델을 출시, 판매량을 메웠다. 이를 감안하면 SM6 인기의 '순도(純度)'는 매우 높다.
◇ 지나친 의존…독(毒)이 될 수도
SM6의 질주는 분명 르노삼성에게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의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서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SM6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이다. 특정 모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회사 전체를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르노삼성이 이미 경험해 본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량 대비 SM6 판매 비중을 살펴보면 월 평균 61.4%에 달한다. 지난 5월에는 71.8%에 달할 만큼 SM6의 비중이 높았다. 르노삼성이 판매하는 차량의 10대 중 6~7대는 SM6라는 의미다. SM6 판매가 부진해질 경우 르노삼성이 입을 타격이 그만큼 크다.
르노삼성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르노삼성이 SUV 모델인 QM6를 론칭한 것도 이 때문이다. QM6 출시 이후 르노삼성의 SM6에 대한 의존도는 줄었다. 지난 9월 전체 내수 판매량 대비 SM6 판매량 비중은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 그 전까지 60~70%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노삼성이 노렸던 효과가 일정 부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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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이 그리고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QM6의 판매 확대다. QM6의 판매가 늘어나면 르노삼성의 전체 판매 볼륨도 증가한다. SM6가 현재의 판매량을 유지해주고 QM6의 판매량이 더해지면 전체 파이도 키우고 특정 모델에 대한 의존도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상존한다. 르노삼성의 바람대로 SM6와 QM6가 동시에 판매량을 유지하거나 늘어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특히 SM6의 경우 최근들어 조금씩 판매가 줄어드는 추세다. 경쟁사들이 중형차급에 신차를 대거 출시해 반격에 나설 경우 순식간에 밀릴 수도 있다. 당장 현대차가 준대형 차급의 신형 그랜저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SM6도 이에 영향을 받을 것은 당연하다.
업계 관계자는 "한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은 해당 모델의 판매다 줄면 르노삼성이 입을 타격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또 외부 충격에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르노삼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 차급별 신차들을 촘촘한 플랜 하에 내놔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