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이 아우성이다. 징글징글한 수주절벽을 넘었다고 환호하는 소리가 아니다. 짧게는 올해, 길게는 내년 중반까지 배를 주려야 하는 보릿고개와 마주한 비명 소리다.
11일 영국 조선해운 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잔량은 1721만2535CGT(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반영한 가치환산톤수)다. 2003년 4월(1734만1655CGT) 이후 월 기준으로 약 14년 만에 최저치다. 2015년 11월 이후로는 17개월 연속 감소 추세다.
국내 조선사들에게는 혹독한 일감 부족에 직면했다는 의미다. 올 상반기 폭발적인 수주량 증가로 수주 절벽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는 약 1년 뒤에야 본격 건조에 들어가는 미래의 일감일 뿐 당장은 조선소에 선박을 만드는 일감이 한참 부족한 게 현실이라는 뜻이다.
작년 한 해 수주량이 223만6018CGT, 45억7700만달러로 올 상반기만도 못할 정도로 워낙 부진했던 탓이다. 올 상반기 283만80CGT, 83억5300만달러로 작년 동기에 비해 2.4배, 3.6배 대폭 호전된 까닭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작년 수주 절벽이 그만큼 극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조선사별로는 현대중공업 조선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잔량이 5월 말 기준 212억8000만달러 수준이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20.3% 감소한 수치다. 척수로는 56척 줄어든 255척이 남아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역시 6월 말 기준 22.9%, 29.3% 감소한 222억달러, 270억달러의 일감만이 남아있다. 중소형 조선사 중에는 전혀 없는 곳도 있다. 이들은 존폐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대형 조선사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최소한 올해까지 보릿고개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도크(선박 건조시설) 폐쇄 외에는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점에서 시름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대량 실직, 협력업체 줄도산, 지역경제 타격 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도크 폐쇄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1개)를 잠정 폐쇄한 데 이어 울산조선소(10개) 내 2개 등 총 3개의 도크를 폐쇄한 상태다. 도크의 추가 폐쇄 가능성도 남아있는 가운데 문 닫은 도크는 언제 다시 운영을 시작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삼성중공업도 하반기 1~2개의 도크 운영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다행히 대우조선해양은 현 수주잔량이 도크 중단 없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수주절벽 이후 일감부족에 대한 우려가 지속돼왔고, 최근 들어 더 이상 도크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유휴 인력에 대해 순환 휴직 등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도크 폐쇄 및 향후 재가동 여부는 시황에 달려있다”며 “올해 수주가 작년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문을 닫았던 도크를 다시 가동시킬 수 있는 규모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