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사업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임직원에게 당부한 내용이다. 타성에 젖은 상태로는 보호무역주의와 글로벌 경기악화, 기술의 빠른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LG전자의 세탁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이 됐고 스마트폰사업은 3년 연속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으로는 역대 최대의 이익을 낸 디스플레이도 중국의 거센 추격에 직면해 4분기에는 실적이 곤두박질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국내 한 신용평가사가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 등 LG그룹 전자계열사의 신용위험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 눈길을 끈다. 문답형식으로 이뤄진 20페이지짜리 보고서의 결론은 "관찰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재계 4위 그룹에 살짝 경고등이 들어왔다.
다음은 나이스신용평가가 11일 발표한 'LG그룹 전자부문 주요 기업의 최근 신용위험 이슈와 향후 전망' 보고서를 요약한 것이다.
① LG전자가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로 받을 영향은?
▲LG전자의 미국 내 판매제품의 가격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매출과 이익규모의 축소가 예상되며 현지공장 설립에 따른 투자부담도 존재한다. 그러나 LG전자 전체매출 중 미국 내 세탁기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 미만이다. 또한 LG전자는 프리미엄 제품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
② 스마트폰 적자는 언제 탈출할 수 있는가?
▲시장 1~2위기업인 삼성전자와 애플도 주력인 프리미엄 제품이 먼저 성숙기에 진입함에 따라 2014년부터 점유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기업들은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한 가운데 제품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시장지위가 강화되고 있다.
LG전자는 프리미엄 제품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시장이 성숙기에 이르렀으며, 중저가 제품도 원가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향후 영업실적 개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6년 1조2000억원, 2017년 7000억원의 영업손실이 났고 올해도 영업적자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인력 재배치, 모델수 축소, 출시시기 조정 등 강도 높은 수익구조 개선활동을 추진하고 있으나 양호한 수익성으로의 복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③ LG디스플레이 상황은 어떤가. 중국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했는데?
▲중국 기업들이 액정표시장치(LCD)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LCD 패널시장의 성장성도 둔화돼 향후 공급과잉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이미 중국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설과 그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로 2015년 하반기 이후 2016년 상반기까지 LCD패널 가격이 급락한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는 매출의 90% 이상,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LCD 사업에 의존한다. 따라서 LCD 패널의 수요와 공급에 불리한 변화가 나타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LCD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LG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위험요소다. 이런 이유에서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위주로 사업구조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④ OLED 투자부담이 만만치않을텐데?
▲LG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 패널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대형 OLED는 대형디스플레이 중 점유율이 5%에 미치지 못해 앞으로의 성장여력이 큰 분야다. 따라서 투자확대로 매출성장과 수익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은 대형 OLED사업에서 영업이익이 나지는 않고 있다. 또한 신규 사업영역인 소형 OLED사업도 수주기반과 수율 확보 등에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수익창출 본격화 시기가 불확정적이다. 이에 따라 당분간 LG디스플레이의 채무규모는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⑤ LG이노텍은 애플에 카메라모듈을 공급하며 좋을 실적을 내고 있다. 괜찮은 상황 아닌가?
▲카메라모듈을 주력제품으로 하는 광학사업부문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이 60%를 넘었다. 단일 사업부문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확보해 양호한 수익창출력을 보이는 점은 기술경쟁력과 규모의 경제 확보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 회사의 사정에 따라 실적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LG이노텍이 영위하는 전자부품사업은 기술변화에 따른 수명주기가 짧아 신규 부품개발 등 시장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이 필수적이다. LG이노텍 광학사업부문의 수주실적과 매출, 영업수익성에 대한 관찰 필요성이 과거보다 커졌다.
⑥ LG이노텍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재무적 영향은?
▲지난해 감가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을 상회하는 8378억원의 순투자가 이뤄졌다. 올해도 수주대응에 따른 설비확충으로 비슷한 규모의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단기적으로 부채비율, 차입의존도 등 재무안정성이 나빠질 수 있다.
사업구조가 광학사업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구조로 바뀌었고, 자본확충보다 채무부담 증가가 빠르게 나타나는 점은 회사의 신용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향후 광학사업부문 실적추이, 타 사업부문의 실적보완 수준, 투자에 따른 채무부담 증가수준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