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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경제교류 30년史…누가 주도해왔나

  • 2018.06.15(금) 16:40

1988년 대우그룹 북한산 도자기 반입 시초
90년대 위탁가공무역·협력사업 성장...'황금기'
2년전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교류 멈춰

"새로운 시장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도 제일 먼저 들어갔던 것이지요. 한번은 유럽 정부의 안보담당 보좌관 친구가 '북한에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해왔어요. 정부에 얘기했더니 다녀오라고 해요. 그게 계기가 됐던 겁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2014년 발간된 책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1980년대 말 ㈜대우(현 포스코대우)의 북한 진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우는 최초로 북한 물자를 국내에 반입한 민간기업이다. 반입 승인받은 물품은 북한산 도자기 519점. 그 전에도 북한이 우리나라 수해 피해 구제차원에서 쌀과 천, 시멘트 등을 공급해준 적이 있지만 민간기업이 대북 교류 주체로 나선 적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공산권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간 교역 증대를 골자로 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1988년 발표한 데 이어 헝가리와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소련 등과 같은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김 전 회장의 설명처럼 새 시장이 열리고 있었던 셈이다.

1988년부터 효성물산이 북한산 전기동과 무연탄을 잇따라 반입하고 현대종합상사가 북한에 방한점포 5000벌을 수출할 수 있던 것도 당시 급변하고 있는 정세에 힘입은 것이다. 교역 전 거의 전무했던 남북간 교역액은 1989년 기준 1872만 달러로 급팽창했다.

 

 

◇90년대 봇물터진 남북협력사업

90년대 들어서는 단순물자교역으로 진행됐던 남북간 경제교류가 위탁가공무역과 협력사업으로 확대됐다. 위탁가공무역은 원료와 자재를 북한에 제공해 이를 조립해 다시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형태이며, 협력사업은 북한에 투자 법인을 설립해 실제 경영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협력사업의 문을 열어제낀 건 북한과 단순교역을 최초로 시작했던 ㈜대우다. ㈜대우는 1992년 북한 조선삼천리총회사와 남포 지역에 '민족산업총회사'를 설립해 섬유제품을 만든다는 사업계획을 내 '남북합영사업자 승인'을 최초로 얻었다. ㈜대우는 1996년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해 셔츠와 스키재킷, 골프가방 등을 생산해냈다.

㈜대우의 남포공장 관리를 맡았던 장경욱 섬유경공업본부장은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포공장은 대북사업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협력사업은 봇물이 터졌다. 정부가 1995년부터 매년 꾸준히 고합물산·삼성전자·태창·대우전자·한국전력·한국토지공사·대상물류·삼천리자전거·LG전자·LG상사·태영수산 등에 합영사업자 승인을 부여한 것. 이중 LG전자는 평양에 TV공장을 설립했고 태창은 금강산 생수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1998년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방북'도 성사됐다.

이같은 성과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함께 정부가 북한과의 화해·협력에 발벗고 나선 결과라는 평가다.

 

실제로 1991년 삼성물산과 럭키금성상사, 현대종합상사, 효성물산 등 국내종합상사들이 북한산 금을 비롯해 아연과 구리, 납 등을 국내에 반입하는 등 단순물자교역 범위를 확대시켰다. 교류 확대를 추동력으로 삼아 정부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합의서는 같은 해 말 남북관계 기본원칙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민간 기업 중심의 교류 협력까지는 나아가진 못했다. 정부는 북한측 사업대상자와 협력사업을 구체화시킨 민간 업체에게 협력사업자 승인을 내주고 최종적으로 해당 협력사업 자체를 승인하는 '승인제'를 통해 민간 업체들의 북한 진출을 통제했다.

한편 코오롱상사는 북한에서 위탁가공한 가방과 셔츠를 1992년부터 국내 판매에 나섰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남북교역과 교류가 중단될 때까지 위탁가공교역에 나선 국내 업체는 150여개에 달했다.

 

 

◇개성공단으로 한 단계 도약

2000년대 들어서도 남북 경제교류 흐름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곳이 개성공단이다. 현대아산과 북한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2000년 개성공단 개발합의서를 체결한 게 시발점이다.

개성공단은 2004년 말 첫 제품을 생산하고 2016년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공단 운영이 중단될 때까지 꾸준히 제품을 생산했다. 2016년 기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과 관련 거래를 튼 기업 수는 모두 5800여개. 여기에는 공단으로 진출은 하지 않았지만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진출한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은행과 BGF리테일이 꼽힌다. 우리은행은 개성공단 주거래은행으로 선정돼 개성공단지점을 개소했다. 국내 은행이 북한 내 지점을 개설한 건 90년대 북한 경수로 사업 당시 한국외환은행 이후 두번째다. BGF리테일은 개성공단에서 점포 3곳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2008년부터 삐그덕…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렇게 운영되고 있었던 남북교역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그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되자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잠정 중단했다.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과 교류를 중단한다는 내용의 '5·24 대북조치'가 나왔다.

이어 2016년에는 잇따른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마저 전면 중단하는 조치가 내려지면서 사실상 30여년간 지속되어 온 남북경제교류는 멈춰버리고 말았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차인 올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대화무드로 전환되는 상황이다. 자연스레 남북경제협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기업들도 경협TF를 꾸리는 곳이 등장하면서 과거 남북경제협력의 양상을 되짚어 보는 움직임도 심심치않게 관측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과거의 남북교류 확대와 중단 사례를 감안하면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북교류협력에 정치적 리스크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만드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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