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량은 자동차 기업의 실적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에요. 여기서 매출도 이익도 현금흐름도 나와요. 하지만 생산지역이나 차종 별로 판매량을 들여다보면 같은 회사 같은 기간이라도 숫자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어떤 경우에는 늘거나 줄어든 폭도 크게 달라 헷갈리는 경우가 적잖아요.
이를테면 이런 거에요. 기아자동차는 기업설명회를 통해 올해 9월까지 글로벌 판매량을 이렇게 3가지 방식으로 내놓고 있어요. 도매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 늘어난 207만3000대, 소매는 1.9% 늘어난 209만1000대, 출고는 3.5% 줄어든 197만7000대로 잡혀요.
각 판매량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출고(Ex-factory)는 공장에서 출고된 차량을 말해요. 생산라인을 빠져나와 야적장에 늘어서 있는,아직 팔렸는지 팔리지 않은 상태인지와는 무관한 생산량을 의미해요.
도매(Wholesale)는 국내 및 해외 등 판매법인별로 딜러에게 판매한 차량 대수에요. 완성차 업체의 판매가 비로소 매출로 확정되는 것은 이렇게 딜러사로 판매가 이뤄진 뒤에요. 판매량뿐 아니라 가격도 여기서 확정되기 때문에 법인판매는 회사 수익으로 직결돼요.
소매(Retail)는 딜러가 최종 소비자에게 파는 거에요. 이미 도매판매로 완성차 회사에는 매출이 확정된 상태라 회사 수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소비자의 최종 선택을 받는 중요한 단계에요.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차를 인수해 행정 등록 절차를 받아요. 그래서 행정당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로 집계되기도 해요.
각 방식의 판매량 집계에 따른 차이는 완성차의 재고로 이어져요. 출고가 많은데 도매가 안팔리면 공장에 재고가 쌓이는 거고, 도매 판매가 많은데 소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딜러사들이 애를 먹는 중이라는 의미에요.
▲ 기아차 9월말 도매-소매-출고 판매량 집계/자료=기아차 제공 |
자동차업계에서는 공장 재고 물량은 통상 1개월 판매량 정도가 알맞다고 해요. 딜러사들이 원하는 물량을 때맞춰 공급할 수 있고 생산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재고물량이 3~4개월 판매량 이상으로 늘어나면 완성차업체들은 부담이 커져요. 재고를 떨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어가면서라도 딜러들에게 물량을 풀게 되는 거에요. 딜러사들과의 가격 협상도 어려워져요. 그래서 소비자 환심을 살 신차를 만드는 것 만큼 재고 관리도 중요하다고 해요.
현대·기아차는 올 초 글로벌 집계로 재고보유일수가 현대차가 2.2개월, 기아차는 3.2개월이었는데요. 같은 시점에 미국의 경우 현대차 4.2개월, 기아차는 5.1개월이나 됐습니다. 그만큼 재고 관리가 심각한 상태였던 거죠. 중국에서도 비슷했고요. 9개월여가 지난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긴 해요.
▲ 2018년 상반기 현대차 글로벌 도매판매(위) 및 소매판매(아래)/자료=현대차 제공 |
현대·기아차는 올해 들어 판매실적 기준을 출고 기준에서 도매로 바꿨어요. 출고된 양보다 실제 판매되는 양에 중점을 둔다는 의미에요. 2001년 판매실적 공고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집계방식을 바꾼 거래요. 올해 현대차 467만5000대, 기아차 287만5000대도 제시한 판매 목표도 도매 기준이에요.
종전처럼 공장 출고로 집계하다 보면 미국, 중국 등 각각의 현지법인에서 쌓여 있는 재고에 둔감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게 집계 방식 변경의 가장 큰 이유래요. 수 년 째 판매량이 뒷걸음질 치는 부진을 겪으면서 내린 고육책인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