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양호 회장이 수세에 몰렸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의결권 자문사들이 조 회장의 사내 이사 연임을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까지 조 회장에게 등을 돌렸다. 본판인 주총장에서의 표 대결이 남아있지만 현재로선 패색이 짙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6일 전체 회의를 열고 27일 열리는 대한항공 주총 안건을 올라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놨다.
전날 회의는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주주권행사 분과위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탓에 5명의 책임투자분과위원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전체회의에서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국민연금의 이같은 결정으로 조 회장의 사내 이사 연임안은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의결권 방향이 사전에 공개된 만큼 다른 주주들의 표심도 이를 따를 공산이 적지 않다.
대한항공 정관상 참석주주 3분의 2(66%) 이상이 동의해야 사내이사로 재선임이 가능하다. 주총 참석률을 100%로 가정할 경우 조 회장 측 지분(33.35%) 외에 32.65%의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11.56%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에 나머지 기타주주(56%) 중 10.44%만 이에 동조해도 조 회장의 연임은 없던 일이 된다.
더욱이 주총 표 대결에서 기타주주(기관 및 외국인, 소액투자자) 표심의 길라잡이가 될 의결권 자문사들이 하나같이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 국내 의결권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연구소 등은 조 회장이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며 일제히 반대를 권고했다.
이들의 자문에 따라 캐나다공적연기금(CPPIB)과 미국 플로리다연금(SBAFlorida),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 외국 연기금들도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 의사를 잇따라 밝히고 있다.
소액주주로부터 상당수의 위임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주총 표 대결에서 조 회장 연임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조양호 이사 연임 반대 의결권행사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의사를 표명한 소액주주 지분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조 회장측이 얼마나 많은 의결권 위임장을 모았는지가 관건이지만 현재의 여론상으로는 '반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조 회장이 재선임에 성공한 선례가 있다는 점은 변수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건에 대해 '과도한 겸직'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지만 조 회장 측과의 표 대결에서 밀려 해당 안건이 가결된 바 있다.
한편 대한항공은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사전 의결권 표명은 위탁운용사, 기관투자자, 일반 주주들에게 암묵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며 "특히 사법부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 가치마저 무시하고 내려진 결정"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