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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00개 '빨간' SK 주유소, '파란' 현대오일뱅크로 변신

  • 2020.05.29(금) 15:43

'리츠 소유 + 현대오일뱅크 운영' 모델
내달부터 내수 2위 도약..수도권 비중 확대

'빨간' SK 간판을 단 국내 주유소 300여곳이 이번 주말을 지나 다음달(6월)부터 현대오일뱅크의 '파란' 새 옷을 입는다. 특히 서울 경기도 등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변화가 더 눈에 띌 전망이다. 바뀌는 주유소의 절반 이상이 현대오일뱅크 점유율이 낮은 수도권에 있어서다.

이 변화로 정유업계 내수 판도 역시 50여년만에 뒤집힐 전망이다. SK(유공)에 이어 GS칼텍스(호남석유)가 지켜왔던 2위 자리가 현대오일뱅크로 넘어가게 됐다. 최근에는 주유소도 예전처럼 차에 기름을 넣는 곳으로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어 그 변신에도 관심이 쏠린다.

◇ 1조3321억원 '정유 빅딜' 마무리

이번에 변화를 맞게된 주유소들은 종전에 SK네트웍스가 운영하던 직영 사업장이다. SK네트웍스는 2000년 SK에너지판매(현 SK에너지)로부터 일부 직영 주유소 운영사업을 넘겨받아 20여년 가까이 운영해왔다. 그러나 그룹 시너지와 수익성에는 한계를 겪었고, 작년 사업개편을 가속하는 과정에서 이를 매물로 올렸다. 310여곳 주유소 중 201곳은 SK네트웍스가 부동산(토지 및 건물 등) 직접 보유했고, 120여곳은 SK네트웍스가 임차해 운영하던 사업장이었다.

작년 10월 이뤄진 입찰에서는 코람코자산신탁-현대오일뱅크 컨소시엄, 맥쿼리자산운용-에쓰오일 컨소시엄의 2파전으로 진행됐다. 재무적투자자(FI)가 주체가 돼 운영사업자와 손잡고 인수토록 하는 구조였다. 업계 1·2위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관심을 두는 듯 했지만 막상 입찰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SK에너지는 애초부터 소극적이었고, GS칼텍스 역시 기존 주유소와 자기잠식효과를 우려해 발을 뺐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하지만 직영 주유소를 새로 개발하고 늘리는 일은 3·4위 정유사들에게는 숙원사업이었다. 결국 본입찰에서는 1조3000억원 넘는 금액을 써낸 코람코자산신탁-현대오일뱅크 컨소시엄이 최종 승자가 됐다. 지난 2월말 이뤄진 최종 계약에서 SK네트웍스는 1조3321억원을 챙기고 사업을 넘겼다. 코람코자산신탁이 3001억원, 리츠(REITs)인 코람코에너지플러스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가 9652억원, 현대오일뱅크가 668억원을 대 인수를 마무리 했다.

새 사업모델은 코람코와 리츠가 자산을 소유하고 현대오일뱅크가 운영권을 갖는 구조다. 몇몇 인수 주유소는 폐업 후 개발하거나 정리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

◇ 전국 주유소의 2.7%..간판교체 효과는

지난 28일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같은 내용의 사업 양수도(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전국 229개 시·군·구별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 현대오일뱅크가 1위가 되기는 하지만 경쟁 제한 우려는 없다는 게 경쟁당국 결론이었다. 이로써 매각인수 양측이 계획했던 내달 1일부터 현대오일뱅크 간판으로 바꿔단 주유소 300여곳이 일제히 영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수 백개의 주유소가 한꺼번에 브랜드를 바꾸는 것은 수십년 정유산업 역사에서도 몇 차례 없던 일이다. 1993년 현대오일뱅크가 1999년 한화에너지플라자의 영업권을 인수해 1100여 개의 주유소를 확보한 것, 옛 쌍용정유가 외환 위기 뒤인 2000년 에쓰오일(S-OIL)로 이름을 고친 것, LG-GS그룹이 분리하면서 LG칼텍스가 GS칼텍스로 간판을 바꿔단 것 정도가 최근 20여년 사이 일이다.

개수 기준 시장 점유율로 2.7%에 불과한 직영 주유소는 옛 주인 입장에선 '계륵'이었지만 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서는 다르다. 내달 1일부터 3위 현대오일뱅크가 SK네트웍스 직영주유소의 영업권을 가져오면 1967년 호남정유 설립이래 GS칼텍스가 50년 넘게 지켜오던 주유소 시장 업계 2위 자리를 가져오게 된다. 공정위원회가 파악한 주유소 개수로 현대오일뱅크의 점유율은 종전 19.5%에서 22.2%로 오르며 GS칼텍스의 20.5%를 앞지르게 됐다.

특히 서울의 경우 현대오일뱅크의 주유소 숫자는 일반휘발유를 파는 곳 기준 45곳에 불과했는데 이번 인수로 서울에 약 50곳, 경기도에 100곳 가량이 늘어난다. 수도권 비중이 낮았던 현대오일뱅크에는 특히 든든한 자원이 되는 셈이다.

판매량으로도 순위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석유공사의 작년 석유수급통계에서 현대오일뱅크의 내수 경질유 시장 점유율은 21.7%, GS칼텍스는 24%로 3.3%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 현대오일뱅크의 시너지 노림수는

현대오일뱅크는 국제유가 급변동으로 불확실한 최근 사업 여건에서 내수시장의 안정적인 판매 채널을 추가 확보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수출은 세계 경기 변동과 환경 규제 등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지만 내수 시장은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작아서다. 300개 주유소는 하루 약 2만배럴의 석유제품을 판매할 채널이다.

더구나 직영주유소는 안정적인 판매채널인 동시에 최근 플랫폼 비즈니스와 대체 에너지 충전 등 신사업의 테스트베드 역할로도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땅값이 점점 높아지면서 직영주유소를 새로 확보해 늘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대오일뱅크를 계열사로 품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그룹 사업 대부분이 기업간 거래(B2B) 형태인 구조에서 현대오일뱅크의 주유소는 거의 유일한 최종소비자와의 접점이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이 가속화되고 상황에서 산업적 경향성(트렌드)를 읽고 적용할 네트워크를 확보한 셈이다.

현대오일뱅크 주유소인수 태스크포스팀(TFT) 장일희 팀장은 "고급휘발유와 윤활유, 첨가제 등 상대적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네트워크가 확대되는 등 다방면에 걸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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