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차가 올 3분기 3조3900억원의 리콜 비용을 한꺼번에 반영한다.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인 세타2 엔진에 대한 리콜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면서다. 작년 한 해 현대차의 영업이익(3조6055억원)과 맞먹는 대규모 비용이 예상치 않게 발생하면서 두 회사는 오는 3분기 적자 전환될 것으로 관측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지만 현대차는 이번에도 '품질 경영에 타협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리콜 대상 차량을 더 넓히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14일 현대차그룹 회장에 선임된 정의선 회장이 과거 엔진 시대의 잠재적 손실을 모두 털고 '새로운 장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 현대·기아차, 3분기 수천억대 적자
지난 19일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 3분기에 세타2 엔진에 대한 품질비용으로 추가적인 충당금을 설정한다고 공시했다. 현대차 2조1300억원, 기아차가 1조2600억원이다. 올 상반기 두 회사의 영업이익 합(2조437억원)보다 66% 더 큰 비용을 한 분기에 반영한다는 얘기다.
리콜 대상 엔진은 2011~2014년식 세타2 엔진이 탑재된 191만4000대, 2015~2018년식 세타2 엔진 230만대, 기타엔진(세타2 MPI·세타2 HEV·감마·누우) 315만9000대 등이다.
이번 리콜 비용 부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18년 3분기 4600억원, 2019년 9200억원을 세타2 엔진 리콜 충당금으로 반영했다.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세타2 엔진 비용을 대부분 털어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의 3배가 넘는 비용이 올해에 반영되면서 매년 3분기마다 세타2 엔진의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다.
오는 26일 실적 발표를 앞둔 현대차는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19일 공시 직후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긴급 품질비용 간담회를 열었다. 실적 발표 전에 애널리스트 대상 간담회를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시장의 우려에 대해 현대차가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셈이다.
세타2 엔진은 2009년 현대차가 독자기술로 개발한 GDi(Gasoline Direct Injection·직접 분사) 시스템을 적용한 엔진으로 소나타, 그랜저 등 주요 차종에 탑재됐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15년부터다. 그해 미국에서 세타2 엔진이 장착된 현대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작년에 합의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현대차와 기아차가 세타2 엔진 관련해 쓴 비용은 총 5조4770억원에 이른다.
이번에 리콜 비용이 대규모 발생한 것은 예상보다 엔진 교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리콜 차량에 대해 검사를 먼저 실시하고 문제가 있는 차량만 엔진을 교체해주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는 얘기다. 보증 대상의 평균 운행 기간도 12.6년에서 19.5년으로 늘리면서 비용 부담이 늘었다. 또 세타2 엔진 외에 고객 불만이 제기된 감마, 누우 등 엔진에 대해서도 '엔진 진동감지 시스템 소프트웨어(KSDS)'를 장착하기로 했다.
대규모 리콜 비용이 반영되면서 오는 3분기 대규모 영업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증권업계에선 현대차가 오는 3분기 1조원대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대규모 리콜 비용이 반영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하나금융투자는 올 3분기 현대차의 영업이익 예상치를 기존 1조1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조정했다. 같은 기간 기아차는 6200억원에서 –5400억원으로 변경했다.
◇ '품질 집착 DNA' 이어진다
이번 리콜 사태로 현대차는 값비싼 수업료를 냈지만 '정의선 시대'에도 품질 경영은 유효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품질에 대한 집착은 정몽구 명예회장 때부터 이어져 오는 현대차그룹의 경영 DNA다. 정의선 회장은 최근 취임사를 통해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과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현대·기아차를 글로벌 선도 업체로 성장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품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개선책도 내놨다. 우선 '시장 품질정보 조직'과 '문제 개선 조직'을 통합한다. 품질 문제를 조기에 감지하고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또 정비 현장에서 발견되는 품질 문제가 신차개발 과정에 실시간으로 반영될 수 있는 업무 체계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대규모 품질비용 반영은 정 회장이 취임사를 통해 예고한 '새로운 장의 시작'에 앞서 과거 잔재는 털고 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대규모 품질비용의 반영은 과거 엔진 시대의 부담을 털고, 신임 그룹 회장 체제의 정착과 미래 자동차 기술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과정에서도 평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