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신년사에서 언급한 숫자들에 관심이 쏠린다. 당장 올해 사업계획, 더 나아가 회사의 장기 지향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3사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5위내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중국 배터리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내 3사가 제시한 목표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은 해당 시장 점유율 22.6%로 중국 CATL(24.2%)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삼성SDI(5.8%, 4위)와 SK이노베이션(5.5%, 5위)이 5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고민 끝에 신년사를 통해 꺼낸 숫자는 0, 1, 60, 1000으로 대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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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새해' LG에너지솔루션 "도전과 혁신 원년"
작년 12월 LG화학에서 분할 출범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첫 새해를 맞은 만큼 포부가 남다르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도 신년사에서 "2021년을 LG에너지솔루션의 도전과 혁신의 원년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남다른 포부를 제시했다.
김종현 대표이사는 1984년 LG생활건강에 입사해 LG그룹 회장실, LG화학 자동차전지사업부장을 거쳐 2018년부터 전지사업본부장을 맡으며 LG의 배터리 사업을 세계 1위 반열에 올려놓는데 기여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 초대 사장을 맡았다.
김 사장은 "독립한 LG에너지솔루션을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은 품질과 고객 가치, 인재"라고 정리하며 "품질에 있어 성능을 포기하더라도 안전성과 신뢰성은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를 위해 사업과 모든 의사 결정의 최우선 순위를 품질에 두고 수주와 생산, 투자의 업무 프로세스를 재정비한다는 방침이다.
김 사장은 "품질에 대해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품질센터장에 최고의 권한을 부여하겠다"며 "현장의 품질 관련 인식이 내용의 가감과 전달의 시간차없이 저를 포함한 경영진에 전달되도록 시스템과 문화도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소비자를 자사의 팬으로 만드는 'LG 팬덤'도 강조했다. 김종현 사장은 "무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간단하다. 고객이 생각지도 못한,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경쟁사보다 탁월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런 가치를 지속 제공하면 우리를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팬덤 고객군'(Fandom Customer Group)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기존 리튬이온전지는 소재 차별화와 팩 설계 최적화 등을 통해 고에너지밀도·급속충전·장수명·저원가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배터리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팩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하나의 팩에 더 많은 배터리 셀을 넣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얘기다.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 진단 기능도 강화해 성능과 안전성 모두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품질을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BMS는 일종의 센서로 배터리 전압과 온도 등의 이상여부를 감지하는 시스템이다.
그동안 쌓은 배터리·차량 운영 데이터를 활용해 제조뿐만 아니라 배터리 '리스'나 '리유즈'에 필요한 인증 서비스 등 '서비스형 배터리'(BaaS·Battery as a Service) 모델도 적극 발굴해 사업화하기로 했다.
앞서 LG화학은 현대차그룹과 배터리 리스 사업을 추진하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전기차 택시 같은 곳에 배터리를 임대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수거해 재활용하는 방식으로도 운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리유즈의 경우 말 그대로 배터리를 재사용하는 것인데, 배터리 내부의 원재료를 재사용하는 방식과 특정 배터리를 기존과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0 그리고 1000
'안전문제 제로(Zero)' 강조한 삼성SDI
삼성SDI 전영현 사장이 새해에 처음 강조한 숫자는 0과 1000이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메일로 공유한 신년사에서 "최고 품질 확보와 안전 문제 제로(Zero)를 달성해 시장의 기회를 우리의 기회로 만들어나가자"고 당부했다.
전 사장은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은 포스트 코로나에서 강조되는 친환경 정책의 중심이고, 비약적 성장이 예고된 미래 핵심 산업"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한 도전 과제로 '절대적인 품질 확보', ' 제품 경쟁력 강화 ', '역동적인 조직문화 구축' 등 세가지를 꼽았다.
무엇보다 전 사장은 "안전을 기반으로 한 절대적인 품질 확보는 그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업의 본질"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그는 "최첨단 제품의 성능을 좌우하는 배터리와 전자재료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며 "품질 눈높이를 PPM(Parts Per Million)이 아닌 PPB(Parts Per Billion) 이상으로 높여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제품 품질을 기존보다 1000배 이상 세밀하게 관리하자는 의미다.
이어 "제품 경쟁력과 시장 선도력을 유지하려면 차세대 선행기술 확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기존 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은 초격차 기술 회사로 발돋움하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직문화와 관련해선 '원팀'으로 협업하는 문화를 기반으로 역동성을 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60
60주년 앞둔 SK이노베이션 "전면적·총체적 변화해야"
SK이노베이션은 꽤 비장하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신년사에서 '전면적' '총체적'과 같은 단단한 어조의 말을 구사하면서 새로운 SK이노베이션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년사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만큼,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로 뉴(New) SK이노베이션을 만들 것"이라며 "어렵고 힘든 변화의 여정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가 창립 60주년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성장한 60년에서 벗어나 친환경 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60년 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해라는 점에서 이같은 신년사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은 다급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속가능한 성장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도 했다.
이와관련 김 사장은 ▲친환경(Green) 중심의 미래성장 가속화 ▲석유화학(Carbon) 사업의 혁신적인 성과 창출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문화 구축 등 3대 핵심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김준 총괄사장은 특히 배터리 분야와 관련 과감한 투자를 예고했다.
그는 "배터리와 소재 사업은 친환경 성장의 중심으로 이제 시장에서 성장 가치를 평가받기 시작했다"며 "과감한 투자를 통한 기술경쟁력 강화,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로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자사만의 독특한 서비스형 배터리 사업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