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동화 같은 로망이 있다. 아무도 없는 매장을 내 것처럼 드나들면서 쇼핑을 하는 것도 흔히 상상하는 로망 중 하나다. LG전자의 오프라인 매장인 LG베스트샵에서는 이런 로망이 실화가 된다.
LG전자는 지난달 26일부터 국내 가전회사 중 처음으로 야간 시간대에 무인 매장 운영을 시작했다. 평일·주말 상관없이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인 오후 8시30분부터 자정까지 고객들이 자유롭게 매장을 살펴볼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확대된 비대면 트렌드를 고려한 것이다.
무인 매장으로 운영되는 베스트샵은 △강서본점 △금천본점 △봉천점 △불광본점 △쌍문본점 △서초본점 등 서울 지역의 6개 매장을 포함해 △인천 부평구청점 △경기 일산본점 △부산 사상본점 등 전국에 총 9곳이다. 이중에서도 간식을 안고 고객을 반겨준다는 AI(인공지능) 로봇 '클로이'를 만나러 LG베스트숍 서초본점을 찾았다.
도입 일주일째인데… 설익었나
LG베스트샵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본인 인증 절차가 필수다. 매장 입구에서 QR 코드를 스캔해 본인인증을 거친 후 매장에 들어갈 수 있다.
2일 오후 8시30분경, LG베스트샵 서초본점의 직원들이 줄줄이 퇴근했다. 하지만 한 직원은 매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서버 문제로 본인인증을 위한 QR코드에 문제가 생겨서다. 무인 매장을 운영한 지 일주일이 갓 넘었으니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터였다. 직원은 죄송하다며 당직자에게 연락해 입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무인 매장을 제대로 체험해보기 위해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베스트샵이 보이는 도로 맞은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9시 정각쯤 한 가족이 매장을 찾았다. 직원은 자리를 뜬 참이었다. 잠시 매장 앞을 서성이던 가족들은 결국 발길을 돌렸다. 말 그대로 무인 매장인 셈이었다. 직원도 없고 손님도 없었다.
야간 무인매장 오픈 1시간쯤 지났을 때 서버 문제가 해결됐다. 9시40분 다시 매장을 찾아 입장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의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인증은 간편했다. QR코드를 인식하면 통신사를 통한 본인인증으로 연결되고, '패스(PASS)' 인증서로 인증을 하면 △이름 △휴대폰 번호 △생년월일이 자동으로 입력된다.
이용약관과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에 동의하고, '최근 2주 이내에 본인 또는 동거가족이 코로나19 확진환자와 접촉하거나 해외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현재 발열, 호흡기 증상 등 코로나19 증상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을 체크하면 출입 인증이 완료되면서 매장 문이 열린다.
내가 바로 베스트샵 주인이다!
매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키오스크를 만나게 된다. 키오스크에서는 제품의 정보를 확인하거나 상담예약을 할 수 있다.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매장 어디에 전시돼 있는지 표시도 해준다. 매장 내 곳곳에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어 필요할 때마다 쉽게 제품 정보를 볼 수 있었다.
1층에는 LG 클로이 바리스타봇이 설치돼 있다. 클로이 바리스타봇은 지난 2월부터 LG베스트샵 서초본점에 취직해 근무하고 있다. 로봇 브루잉 마스터 자격증을 획득해 원두 고유의 맛과 풍부한 향을 항상 일정하게 제공한다는 것이 LG전자 측 설명이다.
다만 바리스타봇이 내려주는 커피는 야간 운영 시간에는 맛볼 수 없었다. 야간에는 2, 3층에 위치한 커피머신을 이용해야 했다. 로봇의 복리 후생에도 힘쓰는 모양이었다.
대신 안내 책자와 간식 등을 싣고 돌아다니는 서브봇은 2층과 3층에서 '열일' 중이었다. 미리 설정된 공간을 끊임없이 돌아다녀 매장을 둘러보면서 여러 번 마주쳤다. 사람을 비껴갈 수 있는 기능까지는 없는 모양인지 동선이 겹치면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했다.
키오스크 외에도 제품의 기능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공간이 곳곳에 많았다. 이전에도 베스트샵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참견하는 직원들이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니 더욱더 세세한 부분까지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직원들이 없으니 구체적인 제품 안내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울 수 있다. 키오스크를 위한 설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품을 현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웠다.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몰을 이용하거나, 상담을 예약한 후 재방문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은 제품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모두 상쇄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면 다소 부담스러워 관심 있는 제품을 전부 보고 가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무인 매장에서는 평소 관심이 있던 모든 제품을 꼼꼼히 볼 수 있었다. OLED와 미니 LED TV 화질이나, 음향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에서도 여유롭게 비교 체험이 가능했다.
이날 방문한 고객들도 같은 평가를 했다. 퇴근 후 베스트샵을 방문했다는 한 30대 직장인 남성은 "사고 싶은 제품이 있어 타사의 매장을 가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 퇴근하고 올 수 있는 가전 매장이 LG베스트샵 밖에 없었다"며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관심 있는 모든 제품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무인매장은 매장에서 대면 상담을 받았던 고객이 구매 결정을 앞두고 제품을 한 번 더 보고 싶을 때도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무인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안마의자'였다. 설령 다른 제품을 보러 왔더라도 안마의자 앞에서는 모든 방문객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직원들이 없어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안마의자 제품에서 유독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할 당시 3대의 안마의자가 한때 만석이 되기도 했다.
"경험 늘려 팬덤 만들자"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유례없는 가전 성수기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집콕'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집안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전 구매가 늘어난 영향이다.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는 올해 1분기 매출 6조7081억원, 영업이익 9199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2분기 역시 호실적을 낼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현실적으로 야간 무인매장이 가전 부문 실적에 가져올 영향은 적겠지만, LG전자가 강조해온 '팬덤' 형성에는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G전자는 비대면 경험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니즈 변화에 따라 무인 매장 오픈을 결정했다. 대면 상담 없이도 고객이 LG전자 제품과 매장에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LG전자의 '팬덤' 키우기 전략과도 맞닿아있는 셈이다.
올해 1월 권봉석 LG전자 사장은 "고객가치를 기반으로 '성장을 통한 변화, 변화를 통한 성장'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고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LG팬덤을 만들 수 있는 미래 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LG전자는 LG 브랜드에 충성하는 팬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무인 매장 운영도 그 연장선상이다. LG전자는 고객의 반응과 운영 결과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향후 무인매장과 운영시간을 늘릴 계획이다.
오승진 LG전자 한국영업본부 한국전략담당은 "비대면 경험을 선호하는 고객의 니즈에 발 빠르게 대응해 대면 상담 없이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무인매장을 런칭했다"며 "고객이 새로운 경험을 하며 LG전자 제품과 매장에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