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현대차그룹이 약 1조원에 인수한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경영진이 지난 10일 한국을 찾았다. 이날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와 애론 사운더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온라인 미디어 간담회'를 통해 '어떻게 자동차와 로봇이 시너지를 낼 거냐'와 같은 질문에 답했다.
현대차와 로봇, 시너지는?
현대차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결합은 쉽게 예상된 것이 아니었다. 1967년 설립된 현대차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일관 체제를 구축하며 글로벌 완성차 5위까지 올랐다. 올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57조7169억원, 임직원 수는 6만5393명에 달한다. 반면 대학 벤처로 1992년 시작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최고의 로봇 기술력을 쌓고 있지만 올 상반기 매출은 227억원, 임직원 수는 200여명뿐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29년째 유망 벤처회사의 차이는 그 만큼이나 크다. 어떤 시너지를 계획하고 있을까?
가장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물류다. 플레이터 CEO는 "우리가 여러 창고 자동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와 물류 부문에서 관심이 통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대차와 손잡으면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며 "미래에 공장을 개선할 수 있는 로봇이나 자동화 창고를 위한 로봇이 개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내년에 물류 자동화 로봇 스트레치(Stretch)를 출시한다. 작년 4족 보행 로봇 스팟에 이어 두 번째로 상용화하는 로봇이다. 반복적이고 고된 물류 하역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사운더스 CTO는 "매년 5000억 개 이상의 상자를 사람들이 직접 옮기고, 이런 작업에서 빈번히 부상이 발생한다"며 "50파운드(22.7kg)의 상자를 들 수 있는 팔이 달린 로봇으로, 시간당 800개의 박스를 옮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비전인 스마트 모빌리티도 공유하고 있다. 플레이터 CEO는 "모빌리티는 사람의 도달 범위를 확장하는 개념인데, 이를 로봇이 지원할 수 있다"며 "로봇 기술이 자동차의 이동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소프트뱅크가 손해 봤다?
대학 벤처로 창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금껏 구글과 소프트뱅크의 손을 거쳤다. 이 기간에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을 상용화하지 못했고, 적자도 누적됐다. 손바뀜이 잦은 탓에 현대차그룹이 가능성만 보고 만년 적자 회사를 인수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일각에선 제기됐다.
이날 플레이터 CEO는 "구글과 소프트뱅크가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다"며 "이들은 인수가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소프트뱅크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현대차그룹에 매각하면서 받은 매각대금은 7132억원이었다. 소프트뱅크가 2017년 구글로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때 이보다 싸게 샀다는 걸 언급한 것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상용화한 로봇 스팟의 성과에도 만족했다. 그는 "스팟에서 많은 매출이 창출되고 있다"며 "내년 스트레치가 상용화하면 이익은 더 늘 것"이라고 전했다. 손익분기점 돌파 시점을 묻는 질문엔 "스팟과 함께 스트레치가 상용화하면 달성할 수 있다"고 답했다.
현대차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6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매출은 227억원이었다. 이 기간 순손실은 872억원에 이르렀다. 이 기간의 성과는 대부분 스팟에서 나왔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에 출시되는 스트레치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물류 시장은 로봇의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로봇연맹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19년 전세계 로봇시장 규모는 112억달러로, 이중 물류 로봇이 4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물류로봇은 2017년 7만5000대에서 2023년 25만9000대로 판매가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