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로부터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1년 유예' 조치를 받았으나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상황이 아니다.
이번 규제가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만큼 향후 두 국가 간 정치적 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상황이 바뀌어 자칫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유예 조치와 별개로 중국 내 생산공장 가동을 이어가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다.
한숨 돌린 삼성·SK
13일 외신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해서는 1년동안 미국 정부에 허가를 신청하지 않고도 장비를 수입하도록 허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 모두 앞으로 1년간 별다른 추가 절차 없이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어 중국 내 생산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상무부는 지난 7일 중국으로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에 유입된 반도체 기술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인권유린 등에 악용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이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에 대해선 개별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필요한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준 것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다롄에서 낸드플래시를, 우시에서 D램을 생산한다. 두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은 모두 미국의 규제 대상 기술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두 회사는 중국 내 공장으로 반도체 장비를 들여올 때마다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유예 조치로 향후 1년 동안은 별도의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업계 관계자는 "건별로 미국의 허가를 받게 되면 번거로운 게 사실"이라며 "단순히 신규 장비를 도입할 때만이 아니라 기존 장비를 유지·보수할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번 조치로 한시름 덜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 커져도 중국 공장 '유지'
반도체 업계는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1년 뒤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조치가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만큼 향후 두 국가 간 정치적 관계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앞세워 중국에 대한 견제를 점점 강화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반도체 규제를 쉽게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 능력에 타격을 입으면, 이들과 거래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도 피해를 볼 수 있어 유예 조치를 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장 1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그 뒤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다"면서도 "아직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가 시행되면, 미국 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번 유예 조치와 별개로 당장 중국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철수하거나 생산량을 줄이지는 않는다는 계획이다. 중국 내 생산공장 가동을 이어가면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전날(12일) "정부와 함께 미 상무부와 긴밀히 협의해 국제질서를 준수하는 범위에서 중국 공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중국 공장 철수' 카드를 꺼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로 그동안 중국 생산 시설에 했던 수직 투자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