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HONDA' 인가?
십수년전 미국에서는 현대차를 보고 일본의 혼다 차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완성차 설계부터 제조, 판매까지 모두 아우르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몇 없지만 당시만 해도 현실은 냉혹했다.
하지만 이젠 다 옛말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은 물론 글로벌 인지도를 착실히 다져나간 덕분이다. 현대차와 기아를 포함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4번째로 차를 많이 판매한 기업으로 우뚝 섰다. 브랜드명 혼란의 당사자였던 혼다를 제친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올해는 또다른 변곡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정책 변화의 파고가 예고되면서다. 트럼프 리스크가 여러 산업군에 걸쳐 전방위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가장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다.
'차'의 나라 미국 사로잡은 현대차
미국은 '차'의 나라다. 땅이 워낙 넓은 만큼 차 없이는 이동 자체가 어렵다. 만 16살이 되면 고등학생들도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후 자차로 통학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도 대단하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승전보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는 91만1805대, 기아차는 79만6488대를 판매하며 두 기업이 합쳐 17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역대 최대 기록일 뿐만 아니라 GM, 토요타, 포드에 이어 미국 내에서 4번째로 많은 차량을 판매한 기업이 됐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는 이유는 현지 문화와 최신 트렌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다. 미국민들의 SUV 사랑을 겨냥한 라인업 확대, 캐즘(일시적 시장 수요 둔화)에 맞선 전기차 경쟁력 제고, 제네시스를 통한 프리미엄 라인 확보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지난해 현대차가 판매했던 자동차 모델 중 전기차 아이오닉5는 31% 판매량이 증가했고 SUV 펠리세이드는 판매고가 23% 증가하며 저력을 보여줬다. 기아차 역시 전기차 EV5와 EV6를 필두로 SUV 스포티지, 카니발 등이 견고한 판매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역대 최대 판매고 유지에 힘을 보탰다. 이에 더해 현대차의 프리미엄 라인인 제네시스는 판매량을 8.4%늘리며 사업 다각화와 이미지 쇄신에도 힘을 보탰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는 여지없이 통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723만1248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세번째로 많은 차량을 판매했다.
미국서만 20% 파는데…트럼프 위기 올까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량은 글로벌 판매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그만큼 현대차그룹에게 미국은 핵심 전략 지역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상황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여러 변수가 생겨서다.
최근 몇 년 사이 완성차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전기차 규제가 대폭 변경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하자마자 바이든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미국 내 판매 신차 전기차 비중 50% 목표를 폐기했다. 이와 더불어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축소도 예고했다. 전기차와 관련된 정책과 보조금 등이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점유율 확대를 이끈 공신 중 하나가 아이오닉5, EV5, EV6와 같은 전기차들 이었다는 점, 미국내 전기차 점유율 2위에 올라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현대차그룹에게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관세 추가 부과 부담도 있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을 온전히 미국에서 생산하는 구조가 아니어서다. 관세가 인상되면 미국이 수입하는 차들의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장 점유율도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미국을 다시금 제조업의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데다 그 중심에는 완성차도 포함돼 있다고 평가한다"라며 "미국이 핵심 전략 지역인 만큼 미국의 정책 방향에 따른 대응 방향을 빠르게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현대차그룹 역시 이같은 흐름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전기차와 함께 미국 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SUV, 하이브리드 차량을 중심으로 미국 내 위상을 수성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되는 비중도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 관세 인상에 대응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 스스로 생존을 위한 전략에 나섬과 동시에 미국 현지 '대관'도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약 14억5000만원)를 기부했다. 아울러 장재훈 현대자동차 부회장과 호세 무뇨스 대표가 취임식 전날 만찬 행사에 참석하는 등 미국 내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행보를 지속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