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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홈플러스 주인 '테스코'의 변심

  • 2014.04.09(수) 08:49

홈플러스 대주주 英테스코 `자금 회수` 모드로
`한국서 번돈 한국에 재투자`→로열티 대폭 올려

지금도 홈플러스의 주인을 삼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홈플러스의 주인은 영국의 유통기업인 테스코(Tesco)입니다. 홈플러스는 테스코가 지분 100%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기업입니다. 월마트나 까르푸와 달리 테스코는 한국의 쇼핑문화를 존중했고 홈플러스라는 토종브랜드를 살렸습니다. 그랬던 테스코에 변화가 엿보입니다. 홈플러스에 대한 지원과 배려보다는 홈플러스가 벌어들인 돈에 눈을 돌리는 모습이랄까요.

 

      
◇ 외환위기로 경영권 넘겨받아

홈플러스는 삼성물산 유통부문에서 시작한 대형마트입니다. 1997년 9월 대구에 1호점을 냈죠. 1호점 점장이 현재 홈플러스 대표로 있는 도성환 사장입니다. 홈플러스의 첫 점포를 열었다는 기쁨도 잠시 뿐 두달 뒤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합니다. 삼성물산도 외환위기를 피할 순 없었습니다. 부채비율이 600%를 넘었습니다.

삼성물산은 1999년 외화를 끌어오기 위해 영국 테스코에 경영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2억5000만달러를 유치합니다. 이 때 설립된 법인이 삼성테스코입니다. 삼성물산과 테스코가 처음엔 49대 51의 비율로 출자했습니다. 그 뒤 테스코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고 수차례 증자를 거쳐 지분율을 95%로 끌어올립니다. 2011년에는 사명에서 '삼성'을 지우고 삼성물산의 잔여지분 5%를 인수해 삼성과 연결고리를 모두 끊습니다. 홈플러스를 테스코그룹의 명실상부한 일원으로 편입한 것입니다.

그 사이 테스코는 이랜드가 운영하던 홈에버(現 홈플러스테스코)도 인수했습니다. 홈플러스테스코는 현재 별도법인이지만 브랜드는 홈플러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배당엔 관심 안둔 테스코

테스코는 IMF 위기 때 헐값에 국내 기업들을 사들인 외국자본과는 달랐습니다. 외환은행 `먹튀`로 천문학적인 돈을 챙긴 론스타를 아시죠? 론스타와는 자본의 성격이 다르지만, 테스코도 마음 먹기에 따라 국내에서 얼마든 돈을 뽑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소비침체와 영업규제로 성장세가 꺾였지만 2000년대만해도 대형마트는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습니다. 홈플러스도 설립 후 5년만에 결손금을 털어내고 배당을 시작했는데요. 첫 배당액이 20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매년 수천억원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지금껏 배당은 한해 50억원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주당 1만원짜리 주식을 샀는데 한해 50원도 못번다면 이런 주식에 투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2007년 이후에는 삼성물산에만 배당을 지급하고 테스코 본사는 한푼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테스코는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국내에 재투자하는데 관심이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배당 대신 이자 노렸다?' 오해와 진실

물론 논란거리는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대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할 때 영국 테스코에 의존했습니다. 홈플러스가 회사채를 발행하면 그걸 영국 테스코가 직접 사주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매년 1000억원대의 이자가 테스코로 흘러갔고, 최대주주가 이자수익을 챙기는 대부업자와 뭐가 다르냐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배(배당)보다 배꼽(이자)이 더 크다는 얘기도 나왔죠.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이 홈플러스에 실(失)이 됐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대주주로부터 증자를 받는 게 좋지만, 대주주가 그럴 여력이 없다면 결국 외부차입을 해야합니다. 이 때 홈플러스를 대신해 대주주가 더 저렴하게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면 어떨까요? 홈플러스는 대주주를 상대로 5년만기 채권을 발행할 때 통상 'CD금리+0.75%포인트'의 금리를 줬습니다. 발행 당시 금리로 환산하면 연 3%대입니다. 국고채 5년물 금리보다 낮았던 때도 많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러한 대주주의 존재가 홈플러스의 재무적 부담을 상당 수준 완화해주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죠.

◇ 태도 바꾸는 테스코, 이젠 자금회수로...

그러나 테스코도 유럽의 경기침체를 피할 순 없었습니다. 실적이 나빠지는 것과 동시에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재작년과 올해 자가점포를 팔고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1조2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이 돈은 2008년 홈에버 인수를 위해 홈플러스가 테스코에서 빌린 돈을 갚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홈플러스는 2012년말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 3800억원을 상환한데 이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엔 각각 3500억원, 2000억원을 갚았습니다. 그간 테스코는 홈플러스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 이를 연장(차환)해줬는데요. 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입니다.

차입금을 상환했으니 홈플러스가 테스코에 지급하는 이자비용도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설립 후 7년이 지나면 이익잉여금의 최소 30%를 배당하도록 정관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간 배당을 거의 하지 않은 건 일종의 예외였던 거죠. 앞으로 테스코가 줄어드는 이자수익 대신 배당을 챙기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요? 전혀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굳이 배당이 아니더라도 테스코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 로열티로 수백억원 책정

테스코는 홈플러스테스코로부터 지난해 'TESCO' 상표와 로고 및 라이센스 대가로 120억원(매출액의 약 0.8%)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는 매년 10억원 안팎을 받았는데 한꺼번에 1600%를 올린 겁니다. 홈플러스테스코는 최근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영국 과세당국이 테스코에 한국법인에서 받는 로열티는 왜 이렇게 적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테스코가 다른 계열사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로열티를 올렸다는 게 홈플러스측의 설명입니다. 굳이 비유하면 테스코 판 '비정상의 정상화'쯤 되겠네요. 이번에 책정한 금액은 지난해 홈플러스테스코가 벌어들인 영업이익(440억원)의 4분의 1이나 되는 규모입니다. 현재 홈플러스테스코 매장에선 테스코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도한 금액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로열티에는 점포운영과 상품소싱 노하우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 단순히 브랜드 사용료만 따져선 곤란하다"며 "해외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다른 회사들에 비해 홈플러스의 지급비율은 더 낮은 편"이라고 해명하더군요. 

 

법인명에 테스코라는 용어조차 없는 홈플러스도 로열티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뀐 비율을 적용하면 홈플러스는 재작년 30억원만 냈던 로열티를 이번에는 600억원 이상 내야할 전망입니다. 최종 액수는 홈플러스의 감사보고서가 나오는 5월말 이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600억원은 재작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작년 기준으로 더 내야할 수도 있습니다.

◇ 시험대 오른 '도성환 리더십'

이번 일이 홈플러스에 대한 테스코의 시각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그간 테스코그룹에서 독특한 위상을 누렸습니다. 테스코는 각국에 진출할 때 회사 이름에 테스코를 앞세웠습니다. 테스코 차이나(Tesco China·중국), 테스코 폴란드(Tesco Poland·폴란드), 테스코 로투스(Tesco Lotus·태국) 등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한국에서만 '삼성' 이름 뒤에 테스코가 붙었고, 2011년 홈플러스로 사명을 변경할 땐 아예 테스코라는 이름도 뗐습니다.

한국에는 테스코 간판을 단 대형마트가 없지만 영국에는 '테스코 홈플러스'라는 간판을 단 대형마트가 10여곳이나 됩니다. 테스코가 한국의 홈플러스 방식을 따라 문을 연 매장들입니다. 영국 테스코가 점포를 설계할 때 2층 이상의 복층을 도입하고 무빙워크를 깐 것도 홈플러스의 점포 형태를 배워간 것이라고 합니다. 테스코 계열사 임원들은 홈플러스의 평생교육스쿨을 벤치마킹하러 국내에 오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누가 로열티를 내야할지 헷갈리지 않나요?

삼성물산과 테스코의 합작 초기 홈플러스 직원들은 영국 주재원으로부터 괄시 아닌 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현업에서 물러난 이승한 회장(당시 이승한 대표)은 이래선 안되겠다며 영국으로 날아가 `폭탄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법적으로도, 비즈니스 면에서도 테스코그룹과는 별개의 회사다. 그룹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를 믿어주면 우리도 그만큼 회사를 성장시키겠다."

깜짝 놀란 영국 임원진은 그 뒤 홈플러스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난해 도성환 사장 취임 이후 테스코그룹 내부에 홈플러스를 테스코의 한국지사 정도로 생각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도 사장으로선 리더십의 위기입니다. 한국법인을 대표해 테스코의 변심을 막을 책임은 좋건싫건 도 사장이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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