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테스코의 한국시장 철수로 국내 대형마트업계가 '신(新) 3국' 시대를 맞을 전망이다. 테스코는 1999년 한국에 진출한지 16년만에 홈플러스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하고 한국을 떠난다. 국내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지 약 20년만에 토종과 외국계의 경쟁구도가 토종(이마트·롯데마트)과 사모펀드(홈플러스)간 대결로 바뀌는 셈이다.
◇ 사모펀드에 팔고 떠나는 英 테스코
테스코는 7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컨소시엄과 홈플러스 지분 100%를 42억4000만파운드(한화 약 7조68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대상에는 홈플러스와 홈플러스테스코, 홈플러스베이커리 등이 모두 포함된다.
테스코는 이번 거래를 통해 세금과 거래비용 등을 제외한 33억5100만파운드(약 6조700억원)의 현금을 회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간 한국에 투자한 금액(약 1조2000억원 추정)의 5배에 달하는 돈이다.
데이브 루이스 테스코 회장은 "이번 매각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회사의 재정을 강화하는데 의미있는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은 "바뀌는 것은 주주일 뿐"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진짜 홈플러스'의 모습을 재창조하면서 고객과 사회를 위해 혁신과 도전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영업규제 때문에" vs "성장전망 밝다"
눈에 띄는 점은 테스코가 홈플러스 매각을 결심한 이유다. 테스코는 그간 한국의 홈플러스와 태국의 테스코 로투스 사이에서 어디를 매각할지 저울질하다가 최종적으로 한국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테스코는 이날 매각사실을 알리는 자료에서 "홈플러스는 영업규제로 지난 3년간 매출이 감소해왔다"며 태국 대신 한국 사업을 접은 이유를 에둘러 설명했다. 그간 매각추진 자체를 함구하던 테스코가 막상 매각이 이뤄지자 '한국에서 철수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반면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의 성장 전망에 후한 점수를 줬다. 약 3개월간 진행된 홈플러스 인수전에서 MBK파트너스가 어피너티-KKR컨소시엄과 칼라일그룹 등 글로벌 사모펀드를 제치며 고액의 인수가를 써낼 수 있었던데는 국내 유통업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MBK파트너스는 앞으로 2년간 홈플러스에 1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는 "홈플러스는 국내 유통업계의 선도기업으로서 업계 최고의 수익성을 실현하고 있는 우량기업일뿐 아니라 미래 성장 전망 역시 밝다"고 강조했다.
◇ 언젠가 또 떠날 사모펀드
유통업계는 벌써부터 'MBK 이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것에 역점을 두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MBK파트너스가 언젠가 다른 주인을 찾아나서지 않겠냐는 관측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해야할 부분이 있는데, 재매각이 목적인 사모펀드가 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임직원들과 관계개선도 풀어야할 숙제로 꼽힌다. 테스코는 이번 매각을 진행하면서 홈플러스에 관련정보를 주지 않아 노조는 물론 임원들의 불만을 샀다. 특히 고용보장에 관심이 쏠린다.
테스코는 이날 매각사실을 발표하면서 "인수자측으로부터 기존 고용을 유지하고 강제해고는 없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았다"고 했지만, MBK측은 고용보장에 대한 언급없이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회사 경영진과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홈플러스 노조는 "MBK파트너스가 고용안정과 분할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외국계 대형마트 굴욕사
테스코의 한국시장 철수로 외국계 대형마트의 실패사(史)가 새삼 거론되고 있다. 앞서 1990년대 프랑스의 까르푸와 미국의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했지만, 현지화에 실패해 2006년 한국에서 모두 떠났다. 이번에 테스코의 철수로 국내시장에는 서울과 대전, 대구 등에 12개의 창고형 할인점을 운영하는 미국의 코스트코 정도만 남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테스코의 경우 영국에서의 실패가 한국에서의 사업정리로 이어진 것이라 월마트와 까르푸와는 차이가 있다"면서도 "끝까지 한국시장을 지켜야하는 토종마트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외국계의 차이가 이번 일로 확연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