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바이오 산업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깊다. 황우석 사태가 터지면서 바이오 연구원은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혔고, 코스닥 시장에선 수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개미들의 무덤’이 됐다. 정부의 지원은 끊겼고, 투자자들은 발길을 돌렸다.
췌장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젬백스앤카엘(이하 젬백스)에 대해서도 시장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한국의 조그만 회사가 어떻게 세계 최초로 췌장암 항암 치료제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다. 반면 세계 각국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임상실험에서는 기대를 걸고 있다.
24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젬백스 본사에서 만난 김기웅 젬백스 IR 이사는 “한국은 바이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시장의 절망감이다. ‘바이오는 사기’라는 공식이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김상재(사진) 젬백스 대표이사는 “초창기엔 의사들조차 한국에서 항암제를 어떻게 만드느냐며 비아냥거렸다”고 덧붙였다.

젬백스는 원래 반도체 필터를 만들던 회사였다. 사명은 ‘카엘’이었다. 2008년 김상재 대표가 ‘카엘’을 인수한 뒤 회사 DNA는 바뀌었다. 그해 10월 젬백스는 ‘카엘젬백스’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노르웨이 소재의 ‘젬백스(GEMVAX AS)’ 지분 100%를 인수했다. ‘젬백스(GEMVAX AS)’는 췌장암, 간암, 폐암의 백신 임상실험을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췌장암 암백신 기술을 보유한 해외 업체를 국내 코스닥사가 인수하자 주가는 요동쳤다. 2008년 10월 2000원대에 거래되던 주식은 2011년 4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일각에서 거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시장은 쉽게 냉정을 찾지 못 했다.
이후 3만~4만원대를 오가던 주가는 2013년6월 1만원대로 주저앉았다. 미국에서 진행된 췌장암 백신 3상 임상실험에서 실패하면서다. 김기웅 이사는 “당시 역시 사기꾼이라며 우리를 손가락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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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던 젬백스는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췌장암 항암 치료체인 ‘리아백스주(코드명 GV1001·사진左)’를 허가하면서다. 김상재 대표는 “그동안 영욕(榮辱)이 많았다”고 표현했다. 국내 허가 이후 회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환자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김기웅 이사는 “하루에 200통 이상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8.7%다. 김기웅 이사는 “췌장암은 발견하면 95%가 수술이 불가능한 천형(天刑) 같은 병”이라고 말했다. 췌장암 환자를 둔 가족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젬백스에 전화를 걸고 있다. ‘리아백스주’는 췌장암의 생존기간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아직 성공을 장담하기는 이르다.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일선 병원에 약이 보급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기웅 이사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고 나서 주가는 오히려 빠졌다”며 “이제까지 신약이 허가를 받은 뒤 시장에 출시된 약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젬백스는 내년에 신약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자회사 삼성제약에서 실제 시판을 위한 검수와 검사를 진행 중이다.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에 출시될 예정이다. 김기웅 이사는 “내년은 시장의 오해와 편견이 해소되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젬백스는 2008년 이후 신약 하나에 약 900억원을 투자했다. 김상재 대표는 “주주로부터 펀딩 등 자금 모집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기술력이 중요하지만, 자금력과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이 나빠서 망하는 R&D(연구개발) 기업은 없다. 자금이 없어서 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