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성장세가 '어마무시'하다. 애플 스마트폰을 대놓고 베끼던 샤오미는 최근 1~2년 사이 파격적인 가격에다 세련된 디자인을 내세워 세계 판매량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최근에는 가전 제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국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때 국내 온라인게임을 가져다 '단순 유통'하던 텐센트는 매출 규모로 글로벌 게임사 가운데 3년 연속 '랭킹 1위'를 지킬 정도의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텐센트는 이미 국내 주요 인터넷, 게임, 엔터테인먼트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분투자를 단행하면서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기업은 불과 4~5년 전만해도 남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모방할 줄 아는 그저 그런 '짝퉁' 기업 정도로 여겨졌다. 특히 'ICT 강국'을 자부하던 국내 기업들은 중국을 몇수 아래로 내려 봤다. 중국 기술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으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이고 국산 기술이 저만치 앞서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녹록지 않다. 중국 ICT 기업들이 거대한 내수와 정부의 진흥 정책을 등에 업고 질적 및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안방'까지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 샤오미, 가전으로 영역 확대…삼성·LG와 전면전
중국 대표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의 제품을 일컫는 말로 '대륙의 실수'를 자주 사용한다. 저렴한 가격치곤 성능이 떨어지지 않고 세련된 디자인까지 더해져 싸구려 중국 제품 답지 않다는 의미다. 불과 2~3년 전에만 해도 샤오미의 '실수'는 스마트폰 영역에 머물렀지만 보조배터리와 스마트밴드 같은 소형 제품을 비롯해 체중계, 공기청정기, 에어컨, 밥솥, TV 등 생활가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에 맹추격을 당하고 있는 삼성전자·LG전자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샤오미가 주력인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울트라HD(UHD) TV 등 가전까지 다루면서 직접적으로 경쟁할 영역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서다.
실제로 샤오미는 삼성전자·LG전자의 안방까지 노리고 있다. 최근 국내 유통 업체인 코마트레이드와 손잡고 공식 판매망을 갖추는 등 '한국시장 공습'을 본격화했다. 코마트레이드는 지난달말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부터 샤오미 TV와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행사의 압권은 코마트레이가 공개한 65인치 UHD 곡면형 TV '미 커브드 TV 3'이다. 샤오미가 올해초 중국에서 출시한 이 제품은 삼성전자의 곡면TV와 같은 패널을 사용, 디스플레이 성능면에서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절반 수준인 8999위안(약 160만원)이다.
코마트레이드는 샤오미표 TV 뿐만 아니라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 생활가전을 국내 대기업 제품의 반값 수준으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LG전자가 스마트폰 외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또 다른 주력 사업을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경쟁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삼성전자·LG전자는 샤오미가 사실상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사업을 본격화함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일 전망이다. 샤오미는 올해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에서 프리미엄폰 '미5(Mi5)'를 선보이며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샤오미는 특허권 침해 문제를 염려해 자국 영토 밖을 넘지 않고 내수에 만족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이었으나 이를 완전히 뒤집는 행보라 주목된다. 샤오미의 미5는 고사양 모델임에도 가격은 50만원대여서 가격 대비 성능면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한데다 샤오미를 비롯한 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들이 중저가폰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갈 길이 더욱 좁아지고 바빠지게 됐다.
◇ 텐센트, 국내 인터넷 산업 '큰손'으로
중국 ICT의 약진은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게임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차이나머니의 국내 시장 공습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게임 대표사인 텐센트만 봐도 좋은 콘텐츠와 흥행성이 높은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게임사를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텐센트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온라인과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앞서고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
텐센트는 2012년 카카오에 720억원을 투자하면서 현재 지분 9.32%를 보유하고 있으며, 넷마블게임즈(25.26%)와 파티게임즈(12.15%) 등의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2014년에는 글로벌 메신저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주식회사와 함께 네시삼십삼분에 1000억원을 투자해 전환상환우선주 66만여주(51%)를 확보한 상태다.
텐센트는 5~6년 전만 해도 국내 온라인게임을 가져다 중국 시장에서 단순 유통(퍼블리싱)하던 곳이었다. 이 가운데 총싸움게임 '크로스파이어(스마일게이트)'와 역할수행게임(RPG) '던전앤파이터(네오플)'가 공전의 성공을 거두면서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으로 부상했다.
텐센트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30% 늘어난 158억달러에 달하고, 이 가운데 게임 매출은 절반 이상인 무려 87억달러(10조원)다. 게임 매출의 대부분은 여전히 크로스파이어와 던전앤파이터 등에서 나온다. 텐센트의 게임 매출 규모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소니, 액티비젼 블리자드 등 유수의 게임사들을 제치고 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다.
텐센트처럼 탄탄한 내수를 발판으로 급성장한 중국 게임사들은 최근 수년간 공격적으로 국내 게임사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차이나머니의 침공은 대부분 지분 투자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고, 아직 적대적 인수합병(M&A) 사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과 한국 게임사간 글로벌 진출을 위해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윈윈' 차원의 지분 투자가 많다.
하지만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이 지분 투자를 더욱 확대하면 자칫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텐센트만 해도 카카오와 넷마블게임즈, 파티게임즈 등의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확보한 주요 주주라 여차하면 경영권까지 넘볼 수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