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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상폐 기업 논란에 대한 단상

  • 2018.10.15(월) 18:18

"개인투자자 주주 역할 충실해 기업과 윈윈해야"

"지금까지 상장폐지된 기업이 몇갠줄 아십니까? 2004년 이후로 554개 기업 22조원 규모입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피눈물이 섞여있는 겁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장에서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은 지난달 한국거래소가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11곳에 대해 상폐 결정을 내린 것이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작은 매출 규모의 기업 정보를 긁어모으고 당국과 거래소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쉽지 않다. 상폐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따른다. 이를 감내하고 거래소 앞에서 피켓시위까지 열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이 상폐될 때까지는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시 의무에 소홀하거나 상당 기간 자본잠식상태에 빠지는 등 문제가 감지되면 해당 기업은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다. 매매 제한 조치에 이어 상폐 종목으로 지정되고 나면 이의신청 절차도 마련돼 있다. 이 모든 과정들은 공시 대상이다.

한국거래소는 상폐 결정까지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소는 주식 시장을 관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문제가 생긴 기업에 대해서는 정해진 절차에 입각해 차별없이 대응한다고도 강조했다.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12일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성원 위원이 "이번 상폐된 기업들은 소명기회가 10여분밖에 없었다고 한다"고 지적하자 "11개 기업 상폐 사유는 (모두) 비적정이기 때문에 내용이 중복된다. 10분이라고 해서 소명기회를 불리하게 줬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태경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 연구원은 "거의 매년 10개 남짓 기업들이 상폐된 걸 감안하면 이번에 거래소가 11개 기업을 상폐하기로 한 것을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상폐 절차가 마련돼 있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이행했다면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적에 대해서도 거래소 입장은 명확하다. 기업이 상폐 조치를 받고 6개월 범위 내 개선 기간을 부여받으려면 기존 감사인(회계법인)과 재감사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이 규정이 기업의 활동범위를 제한한다는 지적에 대해 거래소는 주주총회의 법적 효력을 유지토록 하기 위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 감사인을 선임해 주주총회에 보고하고 그 감사인에게 감사를 받는다.

재감사 계약 시 감사인이 최초 계약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해 갑질에 나선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감사인은 최초 감사 시 각종 장부에서 샘플을 추출해 기업 활동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감사를 실시하면 모든 장부를 처음부터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인력 운용에 따른 비용이 늘어난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관계자나 투자자는 기업이 상폐되면 주식이 휴지조각이 돼버리니 안타까울 것"이라면서도 "결국 시장은 '상장기업 정보는 다 공개돼 있는데 왜 그런 기업에 투자했는가'라고 물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상폐 사태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상폐가 예고없이 이뤄진 것도 아니고 그간 공시를 통해 매도 기회도 찾을 수 있었는데 투자자들은 왜 지금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느냐'는 말로 압축된다.

물론 상폐 기업 중 4곳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투자자 피해를 구제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국감 종료 후 당국이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매년 상폐 기업이 나오고 있는 만큼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시장에 대한 인식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을 단순 투자의 장으로 본다.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한 네티즌이 자신을 상폐 기업의 주주라고 밝히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글을 게재하자 '굳이 왜 그런 기업에 투자를 했느냐' '다른 종목에 투자해서 얼른 손해를 메꿔라'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투자를 단타로 돈을 뻥튀기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자산을 굴린다는 생각을 가져야 기업과 투자자가 윈윈할 수 있다"며 "개인투자자는 영향력이 미미할지라도 기업 활동에 열심히 관여함으로써 정보 불균형을 깨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투자자가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0%, 80% 가량이다. 머릿수로 따지면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에 비해 압도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주주 활동을 깐깐하게 전개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기업의 주주가 되는 건 그 기업의 동업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들은 기업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정보를 계속해서 요구해야 한다. 기업에 이상이 감지되면 문제를 바로잡도록 소리쳐야 한다. 그게 스스로의 자산과 기업을 모두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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