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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상폐제도 맹점…대주주 '폭거' 부추긴다"

  • 2019.04.26(금) 14:32

CFA협회 ESG 심포지엄…'대주주' 중심 지적
"韓 지배구조 수준, 태국보다 낮다" 평가도

기관투자자의 보다 활발한 의결권 행사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자진 상장폐지 제도 허점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대주주를 막을 수 있는 소액주주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CFA한국협회는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제4회 ESG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행사는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약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김우창 고려대 교수와 김봉기 밸류파트너스 대표의 발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영문 앞자리를 따 만든 조어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이사는 행사 발표자로 나서 "현재 자본시장 제도는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치우친 부분이 상당수"라며 "소수주주로서 할 수 있는 의결권 활동에 제한 요소가 많아 의결권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이끌고 있는 밸류파트너스는 주주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한 운용사다. 2007년부터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해 최근에는 키스코홀딩스와 아트라스BX 등에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과거 자진 상폐를 진행한 기업 사례를 분석해 대주주가 소수주주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 제도적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이었던 골판지 원지제조사 태림페이퍼가 대표적이다.

태림페이퍼 최대주주 트리니티원의 최대출자자 사모펀드 IMM은 2015년 5월 태림페이퍼 지분 34.54%를 주당 5366원에 총 736억여원을 들여 장외 매수했다. 동시에 태림포장 등 우호지분 획득에 나선 IMM은 이듬해 8월 태림페이퍼를 상폐시켰다.

IMM은 공개 매수와 태림페이퍼를 통한 자기주식 취득으로 작년 7월 지분 전량을 확보했다. 태림페이퍼는 그해 3분기 보통주 1당 4311원씩 총 600억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했다. 배당 성향은 92.5%로 직전 5개년 평균 5.9%에서 20배 가까이 확대했고 투자금의 상당량이 회수됐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 대표이사 [사진=이돈섭 기자]

기업이 자진 상폐를 진행할 때 소액주주 지분이 정당한 가치를 받았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공개매수 가격 산정 방법은 현행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최근 주가에 일정 수준을 할증해 결정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문제는 소액주주 입장에서 자진 상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는 점이다. 헐값 매수가 진행될 경우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 법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은 자진 상폐 요건으로 최대주주 등이 자사주를 포함해 신청 시점에 지분 95% 이상을 갖고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폐 신청 후 기업이 소액주주 지분을 공개 매수할 경우 해당 기업이 매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자사주 매입을 통해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최대주주가 회사 자금으로 자기 지분을 매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문제는 신의성실 의무가 있는 기업 이사들이 대주주 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ACGA(아시아지배구조협회·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수준은 호주의 절반 수준으로 말레이시아, 태국 등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이사들이 주주 이익을 위해 의사 결정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하면서 "법과 제도 측면에서 이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자진 상폐를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인 '지분율 95% 조건'에 회사 자사주를 포함하지 않게 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이종걸 이춘석 등 의원 10명이 지난 2월 발의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주 목소리가 키워지지 않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불가능하다"며 "올 3월 주총은 우리나라 자본시장 발전에 있어 큰 모멘텀을 제공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CFA협회는 151개국 16만명 이상의 투자 전문 인력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국내 투자 및 재무관련 인력들로 구성된 CFA한국협회는 1999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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