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N에서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를 시작했습니다.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잃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 분)이 60일 동안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정돼 국가를 이끄는 내용인데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관료들이 모여 외교와 안보, 경제 등 시급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장면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로 은행 폐쇄가 거론됩니다.
관료 B : 안 됩니다. 은행 업무를 폐쇄하면 48시간 이내에 문 닫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속출할 겁니다.
관료 C : 은행 문을 왜 닫아요. 그렇게 하면 우리 경제 뇌사 판정하는 겁니다. 심폐소생술도 못 해보고요.
사실 이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각색한 건데요. 국회 테러로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의원이 사망하고 사임 예정이었던 내각 각료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 분)이 갑자기 대통령이 되는 내용입니다.
큰 틀의 스토리는 같지만 적을 북한으로 설정하고 한국의 정치 외교 상황에 맞게 각색한 점에서 차이를 보이죠. 그런데 앞서 살펴봤던 은행 폐쇄 논의는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로 가볼까요.
관료 B : 현금 유동을 차단해선 안 됩니다.
관료 C : 48개월의 불황보단 48시간의 중단이 낫습니다.
관료 A : 모두 한꺼번에 인출하면 은행이 무너집니다.
대통령 : 우선 은행은 폐쇄하고 ATM과 카드는 운영하게.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가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논의한 사안이 왜 은행 폐쇄일까요. 아마 뱅크런(Bank Run)을 우려했기 때문이겠죠.
뱅크런은 은행의 대규모 예금인출사태입니다. 경제 위기가 감지되면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은 은행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해 예치한 돈을 인출하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은행에 예금을 찾으러 빨리 달려간다(RUN)고 해서 RUN(런)이 붙여진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많은 사람이 예치한 돈을 찾겠다고 하면 은행 입장에선 당장 돈이 없으니 위기에 빠지게 되겠죠. 은행은 보통 예금 중 지급준비율 만큼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대출이나 투자에 쓰고 있기 때문에 뱅크런이 일어나면 최악엔 파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이라곤 하지만 실제 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이 문을 닫더라도 1인당 5000만원까지는 예금자 보호를 해주고 있지만요. 그 이상의 자금이 은행에 있거나, 예금자보호법마저 신뢰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선 뱅크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뱅크런에서 유래한 펀드런, 본드런, 스톡런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자들이 경제 위기 상황에서 투자한 펀드, 채권, 주식 등에서 돈을 빼내려는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관료 E : 내일 주식시장은 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서킷브레이커가 있다 해도 10% 하락하면 일반 연금, 학자금 펀드에서 수십억 달러가 사라집니다. 몇년간 복구해야 할 정도로 타격이 클 겁니다.
관료 F : 시장은 불안한 걸 못 견딥니다. 마구 팔 겁니다.
'지정생존자'에서는 지정생존자로 대통령이 된 톰 커크만이 암살 기도로 부상을 입고 수술대에 오르면서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됩니다.
그때 다른 꿍꿍이가 있는 부통령은 관료들의 말을 무시하고 주식시장을 정상 개장합니다. 그리고 위기를 감지한 국민들은 실제 주식시장과 펀드에서 자금이 대거 빼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스톡런, 펀드런이죠.
이처럼 달린다는 의미의 런(RUN)이 경제 용어로 쓰일 때는 위기에서 돈을 찾기 위해 달리는 모습을 뜻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금융위기가 있을 때마다 뱅크런 등이 발생하거나 우려됐다는 점도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