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나스닥'이라고 불리는 항셍테크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한지 딱 한 달이 됐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샤오미처럼 국내 투자자들도 익히 알만한 유명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상장된 항셍테크지수를 기초지수로 삼았다는 점에서 출시 전부터 주목받았던 ETF다.
특히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KB자산운용 등 '빅 4 ETF 자산운용사'가 나란히 상품을 출시하면서 묘한 신경전도 예상됐다. 그만큼 초반 성과에 대한 금융투자업계의 관심도 크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초기 거래량에선 삼성운용의 'KODEX 차이나항셍테크 ETF'가 경쟁사 상품들을 크게 따돌리고 독주하고 있다. 4종의 항셍테크 ETF가 동시 상장한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올 1월 14일까지 KODEX 차이나항셍테크 ETF의 일평균거래량은 72만4600여주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하루 평균 미래에셋운용의 'TIGER 차이나항셍테크 ETF'는 50만1300여주, KB운용의 'KBSTAR 차이나항셍테크 ETF'는 47만6500여주가 거래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투신운용의 'KINDEX 차이나항셍테크 ETF' 거래량이다. 나머지 3사의 항셍테크 ETF보다 거래량이 현저히 떨어져 2만7000여주에 그치고 있다.
KINDEX 차이나항셍테크 ETF의 거래량만 유독 부진한 배경으로는 ETF 출시와 더불어 투자 고객을 상대로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벌이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홍보·마케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판단이다. 실제 삼성운용은 ETF 상장과 동시에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한 경품 이벤트를 벌였고, 미래에셋운용 역시 KB증권과 손을 잡고 ETF 거래 고객에게 문화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등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투신운용이 근래 회사 차원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상품에 주력하다 보니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 상품에는 상대적으로 힘을 빼고 있다고 분석한다. 향후 시장 흐름의 이동 여부에 따라 항셍테크 ETF에 전략적으로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올 들어 코스피가 사상 최초로 3000선을 돌파하면서 시장의 이목이 온통 국내 증시에 쏠리고 있는 터라 항셍테크 ETF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각 상품별 성과 역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이들 모두 항셍테크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다.
지난해 7월 말부터 산출되기 시작한 항셍테크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0개 대표 테크 기업을 구성종목으로 하고 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처럼 전통적인 테크 기업 외에도 인터넷과 핀테크, 클라우드, 이커머스, 디지털 등 새롭게 떠오른 테크 기업들이 골고루 포함됐다. 섹터 비중은 정보기술(IT)이 절반가량(47.9%)을 차지하고 자유소비재(26.3%)와 커뮤니케이션(14.4%), 헬스케어(10.1%), 금융(1.3%) 순이다. 종목별로는 샤오미나 텐센트, 알리바바, ZTE, SMIC와 같은 유명 기업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특히 항셍테크지수에 속한 기업들은 중국의 신성장 산업을 주도하는 혁신 기업이다. 매출 성장세가 두드러질뿐더러 연구개발(R&D) 투자에도 아낌없이 돈을 쓴다. 중국 최대 소셜커머스 업체로 국내 투자자들에게 '중국판 쿠팡'으로 불리는 메이투안의 경우 2018~2019년 매출성장률이 50%에 육박하며 3년 평균 R&D 투자 비중이 10%를 웃돈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대표 테크 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발판 삼아 홍콩 증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항셍테크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국내 대형 운용사들이 관련 상품을 동시에 출시한 것도 그만큼 항셍테크 시장의 성장 모멘텀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수민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중 분쟁에 따른 중국 신경제 기업들의 본토 및 홍콩 거래소 상장 귀환과 신성장 기업의 기업공개(IPO) 장소로서 홍콩거래소 채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향후 항셍테크의 지속 성장을 전망하는 주요한 근거"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로 중국 테크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일시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과 최근 앤트그룹 상장 무기한 연기 사례처럼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규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 항셍테크 ETF 투자 시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나스닥지수만 해도 다양한 이벤트를 겪으며 지난 10년간 900%가량 상승한 사례가 있다"며 "항셍테크 ETF의 경우에도 장기 투자 관점에서 조금씩 분산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투자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