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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보수'도 불사…연초부터 운용사들 ETF 총력전

  • 2022.02.09(수) 06:35

ETF 성장 기대 속 주요 상품 보수 인하 잇달아
점유율 두고 운용사 수장 간 자존심 싸움 심화

새해 벽두부터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자산운용사들의 경쟁이 거세다. 동학개미운동 등을 계기로 공모펀드를 제치고 핵심 먹거리로 자리 잡은 ETF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운용사들은 각종 마케팅 카드를 쏟아내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투자 트렌드에 걸맞은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지난해에 이어 주요 상품들의 보수를 '제로(0) 수수료'에 가까울 정도로 앞다퉈 인하하면서 출혈 경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김기훈 기자 core81@

삼성·미래에셋·KB, 잇달아 ETF 보수 인하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 점유율 1~3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은 최근 잇달아 자사 주요 ETF 보수를 낮췄다.

보수 인하 경쟁에 먼저 불씨를 댕긴 것은 미래에셋운용이다. 미래에셋운용은 지난해 말 미국 대표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일간수익률 2배를 추종하는 'TIGER 미국S&P500레버리지 ETF'의 총 보수를 연 0.58%에서 0.25%로 0.33%포인트 내렸다. 이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해외지수 레버리지 ETF 보수로는 최저 수준이다.

미래에셋운용의 선제공격에 허를 찔린 삼성운용은 곧바로 국내주식형 2종(KODEX 헬스케어, KODEX 200ESG)과 미국주식형 2종(KODEX 미국반도체MV, KODEX 미국스마트모빌리티), 미국리츠 1종(KODEX 다우존스미국리츠(H)), 국내외 채권형 2종(KODEX 10년국채선물, KODEX 미국채10년선물) 등 주요 ETF 7종의 보수를 연 0.25~0.45%에서 연 0.07~0.09% 수준으로 한꺼번에 낮추면서 맞불을 놨다. 

뒤이어 KB운용도 'KBSTAR 헬스케어'와 'KBSTAR 200 건설', 'KBSTAR200 IT' 등 ETF 3종의 보수를 연 0.05%로 인하했다. 삼성운용과 KB운용의 보수율은 채 0.1%도 되지 않아 운용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제로 수준에 가깝다. 수수료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투자자 유치와 점유율 확대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KB운용은 이에 더해 ETF 전용 홈페이지도 새롭게 꾸몄다. 메뉴 구조 개편 및 검색 기능 강화 등을 통한 편의성 향상과 더불어 특히 신경 쓴 것은 인공지능(AI) 투자분석 플랫폼이다. 

KB운용은 자체 AI 솔루션인 앤더슨을 기반으로 KB금융그룹의 투자분석 AI 플랫폼을 고도화한 'KB-DAM(Digital Asset Management)'을 홈페이지 메뉴(AI Insight)로 넣었다. 24개 지역의 주요 자산 지수 예측 추이와 투자 전망치 확인이 가능하다.

ETF 성장세 계속…디폴트옵션 효과 기대도

이처럼 운용사들이 연초부터 ETF 마케팅 총력전에 나서는 까닭은 상품 도입 이래 최전성기를 맞은 ETF 시장이 국내외 증시 변동성 확대를 등에 업고 더 가파른 성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분산투자 대표 상품으로 간주되는 ETF는 일반적으로 주식보다는 안전하면서 펀드보다는 수익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539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71조9024억원에 달한다. 연초 증시 조정 여파로 지난해 말 73조9675억원에서 2조원가량 줄어들긴 했지만 최근 몇 년간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올해 80조원 돌파는 무난하리란 게 운용업계의 판단이다.

지난해 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 통과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오는 7월12일부터 도입된다는 점도 운용사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이유다. 디폴트옵션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적립금에 대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사업자가 사전에 가입자가 동의한 대로 대신 운용해주는 제도다. 

운용업계는 디폴트옵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은행·보험사로부터의 퇴직연금 '머니 무브(자금 이동)'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의 생애주기에 맞춰 운용되는 타깃데이트펀드(TDF)와 함께 ETF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운용사 수장들 자존심 싸움

일각에선 ETF 각축전 속에서 점유율 상승의 사명을 띠고 새롭게 회사를 이끌게 된 운용사 수장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연초 분위기 선점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TF 시장에서 미래에셋운용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삼성운용은 지난해 말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출신으로 삼성증권 세일즈앤트레이딩(S&T)부문장을 맡고 있던 서봉균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대표이사에 앉혔다. 삼성생명 출신 인사가 대표를 맡던 관행을 깨고 삼성운용을 이끌게 된 서 대표는 취임과 더불어 ETF 시장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미래에셋운용이 최창훈 부회장과 이병성 부사장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한 가운데 ETF 점유율 확대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신한자산운용은 각각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배재규 삼성운용 부사장과 조재민 전 KB운용 대표를 대표이사와 전통자산 부문 대표로 영입해 ETF 시장 공략의 중책을 맡겼다. 

KB운용을 ETF 시장 점유율 3위에 올려놓은 장본인인 이현승 대표의 경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지만 임기가 1년인 만큼 선두권으로의 도약에 더욱 고삐를 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ETF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은 ETF 시장 판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도 꺼낼 수 있는 카드들은 모두 손바닥 위에 올려둔 채 던질 시기를 저울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일 기준 ETF 시장 점유율 순위는 삼성자산운용이 42.76%로 1위를 달리는 가운데 미래에셋운용이 35.59%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아울러 KB(7.75%) 한투(4.65%), NH-아문디(3.01%), 키움(2.68%), 한화(2.23%), 신한운용(0.81%) 등이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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