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도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신저가를 기록하며 500만 개미의 애를 태우고 있다. 증권가도 목표주가를 내리며 기대치를 낮추고 있는 모양새다.
부진이 길어지면서 그 배경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선진 기술력과 불리하게 급변하는 대외 시장환경이 주가의 발목을 잡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실적·주가 모두 '역대급'
7일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잠정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0.56%, 1.66% 증가한 77조원, 14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전년동기 65조3900억원, 9조3800억원보다는 각각 12조원, 5조원 가까이 늘었다.
삼성전자의 이번 실적은 어닝 서프라이즈급이다. 통상 반도체 '보릿고개'로 알려진 1분기에 매출액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시장 전망치도 뛰어 넘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서는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75조원, 13조원 수준으로 예측한 바 있다.
양호했던 반도체 수급과 함께 원·달러 환율 상승, 스마트폰 출하량 증가 등이 깜짝 실적의 발판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부문별 실적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NH투자증권은 스마트폰 판매 호조에 힘입어 IM(IT·모바일)이 전분기 대비 가장 큰 실적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역대급 실적도 주가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분기 기준 최대 매출액을 발표한 날 공교롭게도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최근 1년내 가장 낮은 수준에 주가가 위치한 것이다. 지난해 4월7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장중 8만6200원까지 오르면서 이 기간 최고점에 위치하기도 했다. 현재 주가인 6만8000원보다 27% 가량 높은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도 심상치 않은 움직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하면서도 목표가는 낮추는 모양새다. 이달 4일 리포트를 낸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12개월 목표주가를 기존 9만3000원에서 8만8000원으로 낮췄다. 그만큼 추가 상승 폭이 축소됐다고 내다본 것이다.
주가 발목 잡는 요인은
주가 흐름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반도체 부문의 최선단 공정과 관련된 기술력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결정적이라고 지적한다.
4나노 파운드리 공정 수율이 대표적인 예다.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4나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정 수율을 35~40% 수준으로 보고 있다. 100개를 생산하면 60~65개는 불량이라는 뜻이다. 반면 경쟁업체인 TSMC의 공정 수율은 7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역량이 글로벌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 분위기도 비우호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팹리스 회사인 엔비디아가 새로운 파운드리 파트너로 인텔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인텔은 유럽에 향후 10년 간 800억 유로(약 106조3000억원)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재건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시장 구조가 재편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미국의 대형 팹리스 업체들이 삼성전자나 TSMC 대신 인텔에 일감을 몰아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녹록지 않은 시장 상황이 전개되면서 각종 투자 지표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 수준으로 책정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9배에서 대폭 후퇴했다. 경쟁사인 TSMC의 25배와는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많이 떠났다. 2019년 하반기 한 때 외국인 지분율은 58%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현재는 51%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외국인들에게 삼성전자의 매력이 최근 3년간 7%만큼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주들의 염원인 파운드리의 실적 개선은 4나노 수율 부진으로 다음을 기약하게 됐고, 스마트폰 게임최적화서비스(GOS) 논란은 갤럭시와 삼성이라는 이름의 신뢰성에 상처를 남겼다"며 "인텔의 대규모 투자 계획도 불안한 변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만약 미국의 반도체 대전략이 아시아 의존도 축소로 방향을 튼다면 삼성뿐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과 경제 전반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