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브로커리지 악화로 기업금융(IB) 사업에 전력을 쏟는 가운데 중형 증권사들이 채무보증 부문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채무보증은 말 그대로 해당 채무에 대해 제3자가 보증을 해주는 것으로 중형 증권사 중심으로 관련 수익이 급증하는 추세다.
여기엔 금융당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제 칼날이 대형 증권사에 집중된 영향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채무보증이 일정비율 이상일 때 규제 대상이 되는 만큼 대형사들이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수익 증가액 대형사 4배…하이證 2000억 돌파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23곳의 지난해 채무보증 관련 수수료 수익은 총 2조2124억원으로 전년 1조7414억원보다 27.04% 확대됐다. 업계 연간 채무보증 관련 수익이 2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채무보증은 기업대출에 대한 지급보증이나 어음 약정매입 등을 조건으로 증권사가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전통 IB영역은 아니지만 엄연한 IB사업의 한 분야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시가 둔화돼 주식중개(브로커리지) 수익이 쪼그라들면서 증권사들은 채무보증을 포함한 IB영역에 사활을 걸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중형 증권사 중심으로 채무보증 수익이 급증한 점이다. 실제 자기자본 1조원 이상인 중형 증권사를 비롯해, 중소형 증권사중 지난해 순익 '톱'을 찍은 다올투자증권의 작년 채무보증 관련 수수료 수익 총액은 8282억원으로 1년 만에 71.14% 급증했다. 증가액만 3443억원으로 같은 기간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822억원)의 4배에 달한다.
하이투자증권은 특히 채무보증 관련 수수료 수익 규모가 압도적이다. 지난해 이 부문 수수료 수익만 2156억원을 거두며 전년도에 이어 중형 증권사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작년 채무보증 수익이 2000억원을 넘어선 증권사는 메리츠증권(2980억원), 하나금융투자(2377억원), NH투자증권(2180억원) 등 3곳에 불과해 웬만한 대형 증권사보다도 벌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DGB금융그룹 편입 이후 IB부문을 더욱 강화하면서 부동산 PF 사업규모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관련 수익도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증권도 채무보증 관련 수수료로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을 거뒀다. 수익금액은 1223억원으로 전년(863억원)에 비해 41.70% 불어났다. 작년 전체 순영업수익 3258억원의 절반 이상(1473억원)이 IB부문에서 나올 만큼 이 증권사 역시 IB의 선방이 돋보였다.
다올투자증권의 경우 자기자본은 아직 1조원이 안 되지만 지난해 중소형 증권사를 통틀어 순이익(1741억원)이 제일 많았던 만큼 채무보증 관련 수수료 수익도 선두권을 차지했다. 이 부문 수수료 수익이 1215억원으로 전년(514억원) 대비 2배 이상 뛴 것이다.
중형 증권사 채무보증 비율 여력…다올·현대차 등 부서 확대
중형 증권사들의 채무보증 수익이 이처럼 급증한 것은 금융당국의 부동산 PF 규제 영향이 크다. 앞서 금융당국은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몸집을 불린 증권사들의 자본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부동산 PF를 비롯한 국내외 개발사업에 자기자본 이상으로 채무보증을 못하게 했다. 이에 모든 증권사의 채무보증은 지난해 7월부터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만 가능해졌다.
이에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대형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대출과 보증업무에 몸을 사리면서 채무보증 수익도 쪼그라들었다. 미래에셋증권과 하나금융투자만 해도 지난해 채무보증 관련 수수료 수익이 각각 37.54%, 20.30%씩이나 감소했다.
반면 중형 증권사들의 자기자본 대비 채무보증 비율은 대체로 대형사보다 여력이 있었다. 여기에 자본확충 등으로 공격적인 IB 투자를 해나가며 관련 수익도 확대된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2000억원 상당의 신종자본증권을 조달하기도 했다.
관련 사업부에도 힘을 싣는 게 중형 증권사들의 최근 분위기다. 다올투자증권은 연초 투자금융본부와 종합투자본부를 '부문'으로 승격했다. 주택, 물류센터 등 부동산 PF 금융에 주력하는 사업부다.
현대차증권은 올해 2월 IB2본부에 복합금융(Complex finance, CF)실을 신설해 부동산 개발투자를 강화했고, 하이투자증권은 부동산 금융 사업 확대 차원에서 투자금융총괄 산하에 프로젝트금융부문을 신설했다. BNK투자증권 또한 부동산 조직 확대에 초점을 맞춰 IB영업그룹을 △부동산금융본부 △PF본부 △부동산투자본부 등 3개로 확대 개편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증시 거래대금 감소 등으로 증권사들의 실적 부진이 불가피해졌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을 감안할 때 채무보증 등 IB부문에서만큼은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