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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물적분할 논란, 싱가포르에선 있을 수 없어"

  • 2022.11.15(화) 11:00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는 거버넌스야!]
데이비드 제럴드 싱가포르투자자연합 대표 인터뷰

한국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초, 정반대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취재팀이 만난 SIAS(Securities Investors Association Singapore)는 화려하고 높은 건물이 즐비한 싱가포르 도심에 어울리지 않는 수수하고 소박한 건물에 입주해있었다.

SIAS는 우리말로는 싱가포르투자자연합으로 번역할 수 있다. 주주권익을 보호하고, 투자자와 상장회사의 '가교' 역할을 한다. 때론 소액주주에 불리한 결정을 하거나, 독립적이지 않은 이사회를 가진 상장회사에 적극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올해 설립 23주년을 맞은 이곳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데이비드 제럴드(David Gerald J.)(이하 제럴드 대표)는 취재팀이 꺼낸 LG화학의 물적분할 등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이슈와 관련 "싱가포르에서는 LG화학의 물적분할 사례는 나올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데이비드 제럴드 SIAS(Securities Investors Association Singapore)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비즈니스워치]

"기존주주 피해주는 물적분할 허용 안 돼"

제럴드 대표는 “싱가포르는 영국법에 기초해 물적분할이 막혀있다“며 "LG화학처럼 가치가 큰 사업 분야를 떼어내 재상장하면 기존 회사에 투자한 주주의 주식가치가 떨어지는데 이런 건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할 회사의 주식을 가질 권한을 주는 방식(인적분할)이라면 가능하다"며 "만약 (한국과 같은 물적분할 후 재상장이 가능하다면) 재상장한 회사의 주식을 기존 주주들에게 줘야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제럴드 대표는 오히려 취재팀에게 "한국에서는 기업이 비중이 큰 사업을 떼어내 재상장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할 장치가 없느냐"고 되물었다. 

LG화학을 시작으로 다수의 기업들에서 물적분할 후 재상장 논란이 잇따르자 현재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 때 기존 주주를 보호하는 방안(반대주주에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5년 내 재상장 시 주식 현물배당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공정 합병가격에 목소리 낸 SIAS

싱가포르에서도 기업과 주주의 이해관계가 대치하는 사례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6년 싱가포르항공이 자회사 타이거항공을 흡수합병하기 위해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매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가격 적정성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불공정한 합병비율 문제와 유사하다.

싱가포르항공은 당시 자회사인 타이거항공의 지분을 55.8%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자회사인 스쿠트항공과 타이거항공을 합병하기 위해(합병 후 타이어항공은 상장폐지) 싱가포르항공이 타이거항공의 소액주주 지분을 매수하고자 했다. 싱가포르항공이 제시한 주식매수가격은 0.41SGD(싱가포르 달러)였다. 

그러나 SIAS는 싱가포르항공이 제시한 주식매수가격이 타이거항공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가격이라고 판단했다. 타이거항공 상장 당시 주가(1.5SGD)와 상장 후 3번의 유상증자를 고려하면 싱가포르항공이 제시한 가격보다 약 40% 높은 가격(0.67SGD)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SIAS는 이러한 근거를 제시하며 소액주주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타이거항공 이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싱가포르항공은 SIAS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여 타이거항공 주식매수가격을 기존보다 10% 올린 0.45SGD로 변경했고, 결과적으로 타이거항공 소액주주들은 기존보다 총액 4600만SGD의 이익을 더 얻을 수 있었다. 

2015년 당시 싱가포르항공 자회사였던 타이거항공에 목소리를 높였던 SIAS의 보도자료 [사진=SIAS 홈페이지]

한국 같은 가족경영에도 목소리 높인 SIAS

상장회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이사회의 독립성 문제는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싱가포르 상장회사들도 이사회 독립성 논란이 있다.

SIAS는 지난 5월 싱가포르 부동산투자전문회사(리츠)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지주회사 '화홍'의 이사회 독립성 문제를 제기했다. 

가족경영체제로 이루어진 화홍 최대주주(총수일가)들이 이사회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이사회 멤버 일부가 사임하면서 새로 이사회를 선임해야하는 시기였다. 

SIAS는 화홍 이사회의 독립성 문제를 우려하며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싱가포르증권거래소의 모범규준에 따라 독립검토자(우리나라의 사외이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화홍은 SIAS의 제안을 받아들여 독립검토자를 임명하는 등 이사진을 재구성했다. 또 SIAS가 지적하지 않았지만 먼저 나서서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회사재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고문도 새로 선임했다. 
 
제럴드 대표는 "예전엔 싱가포르도 이사회를 경영진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임명하면서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하는 한국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와 SIAS가 나서서 기업에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독립검토자 선임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럴드 대표는 "독립검토자가 제 역할을 못하면 주주들이 모여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독립검토자에게 직접 전달하고 또 독립검토자들이 먼저 SIAS에 와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주주이익 보호하고 가치 공유해야"

이처럼 상장회사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행동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SIAS는 정부로부터 기업 감시권한을 위임받은 곳이 아니다. 순수 민간단체이자 자선단체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싱가포르 주식시장에서 효과적인 워치독(watchdog)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이비드 제럴드 SIAS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비즈니스워치]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은 아니다. 1999년 설립 후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시장의 감시자로 활동해오며 쌓아온 신뢰와 평판의 결과다. 

SIAS의 활동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 상장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경영전략, 재무구조, 지속가능성 등 투자판단에 중요한 질문을 정리하고, 기업에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다. 

SIAS가 매년 상장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살피고 문제가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는 감시자 역할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결국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함이다.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만들어져야 기업과 주주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게 SIAS의 철학이다. 

좋은 기업지배구조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럴드 대표는 3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윤리적으로 존경받는 청렴한 정신을 가져야 하고 두 번째 주주들의 이익을 잘 보호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기업 가치를 주주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럴드 대표는 "기업이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갖추려면 소액주주들이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주주들과 자주 소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함께 인터뷰에 응한 벤자민 고(Benjamin Goh) SIAS 투자자교육 및 리서치부문 팀장은 "싱가포르에도 젊은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해외투자에도 관심이 많다"며 "SIAS의 활동은 투자자들에게 기업에 질문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종의 선택지가 생긴 것이고, 기업들에겐 더 많은 투자자를 신경 써야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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