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조원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 CIO·최고투자책임자) 자리에 서원주 전 공무원연금공단 자금운용단장이 발탁됐다. 삼성생명 출신으로 해외투자 이력이 풍부하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서원주 신임 기금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 셀프 연임 관례를 견제하겠다고 공언했다.
27일 국민연금은 기금이사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신임 기금이사로 서원주 후보자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서 이사는 이날부터 2024년 12월26일까지 2년간 기금운용본부를 이끌게 된다.
1965년생인 서 이사는 1988년 삼성생명에 입사해 해외투자팀, 뉴욕투자법인, 싱가포르투자법인 등을 거친 '해외통'이다. 2014년에는 PCA생명보험(현 미래에셋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자산운용본부장을 맡았으며, 2019년부터 올해 5월까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CIO격인 자금운용단장을 지냈다.
그는 이날 오후 국민연금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을 열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서 이사는 수익률 제고를 위해 운영 경험과 역량을 온전히 쏟아부을 것을 약속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발발 이후 지난 3년간 연평균 10%를 자랑했던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은 올 들어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우려 등 시장 하방압력이 높아지며 마이너스(-)로 고꾸라졌다. 9월 기준 기금 수익률의 잠정치는 -7.06%를 기록 중이다.
서 이사는 "최근 금융시장과 어려운 운영여건이 오히려 장기 포트폴리오 운영 측면에서 또 다른 기회를 주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의 금융전문성과 투자역량을 모아 리스크를 감안한, 유연한 포트폴리오 자산배분과 보다 탄력적이고 액티브한 투자전략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주권 행사와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에 힘쓰겠다고 했다. 특히 기업들의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서 반복되고 있는 셀프 연임에 대해 강한 견제를 예고했다. 앞서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유분산기업의 대표이사나 회장 선임 과정에서 내부인과 외부인을 차별하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서 이사는 "KT나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들의 CEO 선임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의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소위 불공정 경쟁, 셀프 연임, 황제 연임과 같은 우려가 해소되고 주주이익 극대화에 부합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사회가 아닌 내부인 간의 기회를 차별하거나 외부인의 참여를 제안한다면 잠재 후보를 확인할 수 없어 최적의 CEO를 선출할 수 없게 된다"며 "주주는 잠재 후보에 대해 모른 채 한 사람만을 위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T의 사례를 좋은 예로 삼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근 구현모 KT 대표이사는 대표이사후보심의위원회로부터 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복수후보와 함께 경선을 치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 이사는 "KT 대표이사 선임이 경선을 통해 이뤄진다면 시장에서도 형식적인 경선 시스템이란 의구심을 갖지 않고 기회와 공정이 있는 경선이 될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KT가 좋은 관행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유출 문제와 관련해선 "주변의 많은 기관들의 수요 등으로 인해 이탈이 있었다"며 "기금운용 전문가 한 분 한 분과 얘기를 나눠보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찾은 뒤 직원들이 나은 미션과 비전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