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 추진에 나선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만들어나가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배당 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할 수 있도록 바꾸고, 자사주 취득과 처분목적 공시도 강화할 예정이다. 또 대량보유보고의무(5%룰) 위반시 과징금을 높이는 등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을 중점 추진한다.
금융위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23년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이러한 내용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우선 지난 24일 발표했던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 폐지 ▲상장사 영문공시 단계적 의무화와 함께 ▲주주친화적 배당제도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강화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시 제재 강화 ▲ESG의무공시제도 구체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등을 올해 추진 업무로 제시했다.
외국인투자자 대상 자본시장제도 개선
외국인투자자 등록제도는 폐지하고 법인 LEI(법인용 ID)와 개인 여권번호만으로 증권사 계좌개설이 가능해진다.
외국인 통합계좌(다수 투자자의 매매를 단일 계좌에서 통합 처리할 목적으로 글로벌 운용사 및 증권사 명의로 만들어진 계좌)의 투자내역 보고의무도 폐지한다.
장외거래 시 사후신고 범위를 확대하고 외국인투자자의 투자 효율성을 위해 영문공시도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당국은 2024년부터 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영문공시를 의무화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외국인 투자자 제도개선은 3분기 중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추진할 계획이다.
배당 얼마 주는지 먼저 알고 투자
배당제도도 개선한다. 금융위는 미국 등 선진자본시장처럼 배당금 규모를 먼저 정하고 나중에 배당받을 주주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손 볼 계획이다.
현재는 배당기준일에 배당받을 주주를 확정한 뒤 배당금을 얼마 받는지 확인하는 구조다. 배당은 상장회사에 투자하는 주주의 핵심권리이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의 낮은 배당 성향과 배당금 액수를 먼저 공개하지 않는 절차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금융위는 배당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배당 관련 불확실성을 줄일 계획이다. 배당정책 개선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연내 진행할 예정이다.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 강화
올해 금융위는 그동안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자기주식(자사주) 제도 역시 손볼 계획이다.
상당수 상장회사는 주주친화정책을 명분으로 자사주를 매입해놓고도 소각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또 주주환원보다는 경영권 강화 차원에서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적분할시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적분할을 하면 분할비율대로 주식을 나누는데 이때 자사주에도 분할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 자사주 자체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로 자사주에 배정한 신주는 의결권이 주어지고, 이것이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다. 일명 '자사주의 마법'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약한 회사들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우호세력과 맞교환하는 식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금융위는 올해 4분기에 자사주 취득·처분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5%룰' 위반 과징금 높인다
상장기업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투자자는 보유지분에 변동이 있거나 보유목적이 변경된 경우 투자자가 알 수 있도록 5일 이내에 보고·공시를 해야 한다. 일명 '5%룰'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 보고·공시의무를 위반했을때 부과하는 과징금 한도가 해당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10만분의 1 이었다. 위반에 대한 처벌강도가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금융위는 5%룰 위반시 과징금 한도를 10만분의 1에서 1만분의 1로 10배 상향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일로부터 6개월 뒤 시행할 예정이다.
ESG공시 의무 구체화
금융위는 2021년 1월 상장기업의 ESG공시 단계적 의무화 일정을 발표한 바 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코스피 상장사부터 ESG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에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올해 업무계획에도 ESG공시 의무화를 포함시켰다.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만들고 있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국내 ESG공시제도 전반에 대한 정책방향을 설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해 안으로 ESG공시에 대한 세부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한국회계기준원 내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국내 ESG공시기준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또 ESG관련 정책자금도 지난해 4조4000억원에서 올해는 5조8000억원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추진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원칙을 담은 스튜어드십코드 개정에도 나선다. 금융위는 기존 스튜어드십코드에 ESG 요소를 반영하고 주주활동 공시를 강화하는 내용을 반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관투자자의 보다 적극적인 책임투자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하고 있는 대표기관인 국민연금은 최근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 관련, 선정 절차가 불투명하다며 반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스튜어드십 제도 강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공모펀드 개선… 회사채시장 지원 한도 늘려
금융위는 지난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및 금융투자업 및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개정을 통해 공모펀드에 대한 제도개선을 단행한 바 있다.
자산운용사가 공모펀드를 설정할 때 2억원이상 고유재산을 함께 투자하도록 해 펀드운용 책임성을 강화했다. 또 성과연동형 운용보수제 도입과 펀드 판매 보수 및 수수료 수취방식에 대한 판매사 설명의무도 넣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혜택 대상 금융상품에 회사채를 추가해 개인 세제혜택도 늘린다.
전환사채(CB)를 활용한 불공정거래를 대응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의 공동조사, 심리 모니터링 강화, 수사기관 협업 등을 통해 조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민간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도 나왔다.
공모를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거래소에 상장해 일반투자자들도 벤처기업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벤처·혁신기업 등에 집중 투자하고 상장을 통해 환금성을 높인 공모형 펀드)를 도입할 계획이다.
블록체인 방식의 토큰 증권(ST)의 발행, 유통체계 정비도 연간 과제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 토큰 증권 발행(STO)은 국내법 상 허용하지 않았다.
증권사 계좌부에 직접 기재하는 방식에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을 포함하는 내용의 전자증권법을 개정해 ST의 발행‧유통 허용한다. 계좌관리기관 요건을 갖추면 증권사를 통하지 않고도 ST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회사채 시장 안정화를 위한 지원 한도도 늘린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는 프로그램인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에 향후 2년간 5조원의 자금을 신규 투입한다.
물적분할, 의무공개매수는 언제?
금융위는 올해 업무보고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추진성과로 공매도 개선과 물적분할 시 주주가치 제고,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상장폐지 제도개선, IPO 건전성 제고,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언급했다.
하지만 물적분할 주주보호방안 및 의무공개매수제도는 국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즉 제도만 발표했지 본격적인 실행은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법 개정이 필요한건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무위원회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자본시장 이슈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것은 없기 때문에 빨리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