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지난해 한화에너지에 ㈜한화 지분을 매각한 것을 두고 배임 논란이 불거졌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영풍·MBK는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해당 지분을 제 가격보다 낮게 처분해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실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풍·MBK는 5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영풍·MBK는 지난해 11월 고려아연이 보유하던 ㈜한화 지분 7.25%를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한화에너지에 매각한 것이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주주대표소송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1월 ㈜한화 지분 7.25%를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한화에너지에 주당 2만7950원에 처분했다. 이는 2년 전 고려아연이 자사주 교환 방식으로 해당 지분을 매입했던 가격보다 3% 낮은 수준이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해당 거래로 약 49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7월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을 주당 3만원에 공개매수 했음에도 고려아연이 이에 응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만약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에 참여했다면 매입가 대비 49억원 손실이 아니라 약 110억원의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가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회손실은 더욱 크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김동관, 김동원, 김동선)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그룹내 유일하게 ㈜한화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다.
영풍·MBK는 그룹 승계를 위해 중요한 주식인데 고려아연으로선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자산을 오히려 손해 보고 처분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화에너지가 오히려 프리미엄을 내도 아깝지 않을 주식이었다고도 평가했다.
이번 거래로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은 기존 14.9%에서 22.16%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한화에너지를 포함한 그룹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의 ㈜한화 지분율도 55.83%로 과반을 넘었다.
최근 주가 상승을 반영하면 기회손실은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한화오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주요 방산 계열사의 주가가 상승하면서 지주회사인 ㈜한화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4일 종가기준 ㈜한화의 주가는 4만4550원으로 4개월 전 매각 가격 대비 59.45% 상승했다.
영풍·MBK 관계자는 "만약 고려아연이 현재 가격에 ㈜한화 지분을 처분했다면 무려 93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기회를 날렸다"라며 "이 기회는 한화와 맺은 3년이란 의무보유약정만 지켰더라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기회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한화 지분을 처분한 이유가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 때문이며 이는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영풍·MBK 관계자는 "마땅히 프리미엄을 받아야 할 주식을 헐값에 한화에너지에 처분해 고려아연과 주주들에게 큰 재산적 손해를 끼쳤다"며 "최윤범 회장은 이런 손해를 잘 알면서도 당시 경영권 박탈 위기에 몰리자 고려아연 주요주주인 한화 계열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회사와 주주들에게 배임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최윤범 회장 측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대규모 금융차입으로 재무부담이 가중됨에 따른 현금 확보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자본시장 주변에선 자가당착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라며 "회사에 2조원이 넘는 고금리 차입 부담을 고의로 지우고, 그 돈으로 대규모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하면서 재무적으로 문제없다고 장담하던 장면을 시장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사회 결의 없이 대규모 지분을 처분한 점도 짚었다. 영풍·MBK는 "㈜한화 지분 처분은 1000억원을 넘는 대규모 자산 매각임에도 고려아연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당초 지분을 취득할 때는 이사회 결의를 했으면서 처분시에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목적에서 ㈜한화 지분을 매각한 것"이라며 "한화그룹과의 원활한 협의를 거쳐 진행된 거래이며 매각 가격은 당시 시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려아연은 또 "상법 및 내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 거래를 진행했다"며 "MBK와 영풍 측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러한 지분 거래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영풍·MBK는 고려아연에 이사인 최 회장과 박 대표를 소송해달라고 소 제기를 청구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이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영풍·MBK가 직접 주주대표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