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자기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처분 계획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재가 부실하거나 아예 빈칸으로 제출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정정을 요구하곤 있지만 상장사를 압박할 만한 수단이 없어 '솜방망이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사주 공시 강화 첫 해…기재 미흡 속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9월 23일까지 임직원 보상·사내조합 출연·스톡옵션 행사 등을 제외한 자사주 처분 공시는 총 111건이었다. 이 가운데 사전에 사업보고서에서 처분 계획을 고지한 곳은 솔본, 롯데지주, 대구백화점, 셀바이오휴먼텍, 대교 등 5곳에 불과했다.
올해부터는 자사주 5% 이상 보유 기업이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취득·소각·처분 계획 등을 이사회 승인 후 사업보고서에 첨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 자사주 처분 공시를 낸 111곳 중 64곳은 사전에 자사주 처분 계획을 알렸어야 한다.
하지만 '계획 없음' 혹은 '향후 경영상황에 따라 결정할 예정'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기재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자사주 처분 계획을 미리 공시한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인 셀바이오휴먼텍도 인수합병 및 임직원 보상용으로 자사주를 처분한다고 공시했으나 실제로는 교환사채(EB) 발행에 활용했다.정정요구 받고도 '계획없음' 언급만
자사주 보고서를 아예 제출하지 않은 상장사도 있었다. △KG에코솔루션(당시 자사주 보유량 14.55%) △제일바이오(5.86%) △웨이브일렉트로(14.76%)는 자사주를 5%이상 보유하고 있음에도 자사주 보고서를 빠뜨렸다.
금감원의 정정 요구 이후 KG에코솔루션과 웨이브일렉트로는 뒤늦게 자사주 보고서를 추가 제출했다. KG에코솔루션은 6월 10일 교환사채를 통한 처분 내용을 추가했을 뿐 처분 계획이 없다고 기재했다. 웨이브일렉트로는 7월 10일 정정을 통해 '확정된 자사주 처분 계획 없다'고 밝혔는데, 이후 2개월 만인 9월 10일 보유한 자사주의 절반 수량을 처분하겠다고 공시했다.
제일바이오는 끝내 정정하지 않았다. 제일바이오는 지난 6월 보유 자사주 170만여 주 가운데 99%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일부는 임직원 보상에 쓰고 나머지는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해 주주환원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주주환원을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셈이지만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되거나 제재 등 조치를 받지 않았다.
취지 약화 우려…금감원 "방안 모색 중"
이처럼 제재가 미약하다 보니 자사주 공시 강화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사주 취득은 유통물량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호재로 평가되는 반면 매각이나 교환사채 발행은 신주발행과 다름없어 악재로 받아들여진다. 또 자사주가 의결권은 없지만 계열사나 특수관계인에 넘겨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회사의 자사주 취득이나 처분 계획은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정보 중 하나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아예 공시를 하지 않은 회사에 대해선 정정을 요구했다"며 "시행 초기인만큼 기재 정정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도를 손볼 순 없기에 상세히 기재하도록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주주환원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미리 자사주 처분에 나서는 곳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9월 한 달 동안만 38곳이 자사주 처분을 공시했으며, 이중 16곳은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키로 했다.
시장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기 전까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처분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질 경우 자사주 매입이 자본의 감소, 부채비율 상승으로 연결돼 기업의 재무부담이 가중 될 수 있다"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행 전 기업들의 자사주 비중 축소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처분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