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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세대교체]①나이의 저주?..실리콘밸리發 대세

  • 2013.08.27(화) 11:13

MS 발머 "1년내 은퇴" 발표..문책 성격 강해
혁신 없으면 쇠퇴..20~40대 CEO 전성시대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평소 '불굴(tenacity)'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다. 임직원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 말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물러서지 않는 발머의 불도저와 같은 근성은 MS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로 끌어 올린 원동력이다. 실제 발머가 사장을 거쳐 CEO에 오르기 직전인 지난 1999년, MS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이 때  MS는 PC 운영체제(OS) 시장을 독점해 경쟁을 해친다고 추궁을 당하던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IT 산업 지형도가 바뀌면서 불도저의 기력도 쇠하는 모습이다. 발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향후 1년 이내에 은퇴하겠다"고 퇴임 의사를 밝혔다. MS가 모바일 혁명의 거센 파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 하자 스스로 자리를 내놓겠다고 선언 한 것이다. IT 산업이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재편되자 더 이상 '밀어 붙이기' 식의 경영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을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실리콘밸리는 혁신을 내세우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는 20~30대 젊은 경영자들이 주목 받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미국 IT 업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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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도저' 발머 시대 저물다
 
발머는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하버드대 동창으로 지난 1980년 회사에 합류했다. 당시 발머는 영업 같은 안살림을 맡았고, 게이츠는 대외 활동을 책임졌다.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잘 맞물리면서 MS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SW) 업체로 발돋움했다.
 
이후 발머는 게이츠 회장 대신 2000년에 CEO를 맡아 사업을 SW에서 하드웨어(HW)나 인터넷 검색 서비스 등으로 확장했다. MS는 경쟁사 애플을 흉내내 MP3재생기 '준' 이나 태블릿PC '서피스'를 자체 제작하는가 하면, 구글처럼 '빙' 같은 인터넷 검색엔진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모방하는 데 그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주력인 윈도우 OS는 PC 시장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애플과 구글이 장악하고 있는 모바일기기 OS 시장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MS는 윈도 OS가 수요 감소에 직면하고 이로 인해 재고 조정과 가격 인하로 이어져 회사 수익은 갈수록 악화됐다. IT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1위를 기록한 MS는 지난해 10월 구글에 밀려 3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MS는 지난 7월 체질 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시작했고 이번 발머의 은퇴 발표는 개편 작업의 방점을 찍는 셈이다. 사실상 발머의 은퇴 계획은 문책 성격이 강하다.
 
발머 CEO는 성명에서 "경영권을 물려주는데 있어 완벽한 시점은 없지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처음부터 마이크로소프트가 기기(디바이스)ㆍ서비스 회사로 변신하는 도중에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장기간 회사를 이끌 새 CEO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구글· 애플 등 물갈이 본격화 
 
미국 IT 기업 가운데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기업은 비단 MS만이 아니다. 인텔과 야후, IBM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성장 둔화에 직면하고 관련 산업이 성숙함에 따라 경영진을 과감하게 교체하고 있다. 비교적 젊은 기업인 구글도 지난 2011년 경영진을 갈았고 '혁신의 아이콘' 애플은 창업주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면서 후계자인 팀 쿡 체제로 체질을 바꿨다.
 
반도체 업계 최강자 인텔 역시 모바일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세대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텔은 약 8년간 회사를 지휘했던 폴 오텔리니 CEO가 지난 5월 물러나고 뒤를 이어 브라이언 크르자니크가 취임했다.
 
야후 창업주이자 전 최고경영자(CEO) 제리 양도 지난해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사임했다. 제리 양이 17년만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물러난 이후 야후는 CEO를 몇 차례 추가로 교체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마리사 메이어부터 사업이 점차 안정되고 있다.
 
IBM은 10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샘 팔미사노가 지난 2011년 물러나고 버지니아 로메티가 후임으로 선임됐다. 로메티는 100년 IBM 역사상 첫 여성 CEO란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세계적 검색엔진 구글도 지난 2011년 에릭 슈미트 CEO가 자신의 자리를 창업주 래리 페이지에게 넘기고 10년 만에 최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애플 역시 지난 2011년 8월 요양 중이던 잡스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쿡 체제가 출범했다. 
 
◇ IT산업 성숙기..혁신 요구 늘어
 
발머를 마지막으로 게이츠, 잡스, 슈미트 등 미국 IT 업계를 주름 잡았던 1세대들이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셈이다. 세계 IT 업계를 실질적으로 좌우해온 1세대들이 떠나면서 실리콘밸리의 중심축은 이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와 같은 젊은 CEO로 옮겨지게 됐다. 이들의 나이는 주로 20~40대로 기존 1세대(50~60대)보다 젊다.
 
세계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29세에 불과하다. 트위터 공동창업자 잭 도시(36)와 야후의 재건을 맡은 메이어도(38) 30대 젊은 CEO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이자 전기차 테슬라자동차의 엘론 머스크는 42세이며, 얼마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49세다. 
 
미국 주요 IT 기업이 세대교체에 나서는 배경에는 관련 산업이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접어든데다 '혁신'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노키아와 블랙베리(구 리서치인모션 RIM) 사례에서 보듯 기업의 흥망성쇠 주기가 짧아져 주춤 했다간 곧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어서다. SNS와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등을 내세운 새로운 기업이 출몰하면서 기존 업체를 위협하는 것도 세대교체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PC만 하더라도 데스크톱에서 입는(웨어러블) 컴퓨터로 바뀌는 등 IT 환경이 격변하고 있다. '불도저' 발머조차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변화의 태풍이 몰아치면서 미국 IT 기업들의 세대 교체의 바람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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