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SK텔레콤 합병 전 신세기통신이 내놨던 패밀리요금제는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가족으로 묶인 가입자 끼리 무제한 음성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 때 음성요금으로만 100만원 어치를 공짜로 썼다고 자랑했던 소비자도 나왔다. 이후 이 요금제는 단종되어 패밀리요금제가 가능한 '017' 번호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KT 합병 전 KTF는 2004년에 월 10만원에 음성통화를 무제한 제공하는 정액 요금제를 내놨다. 역시 당시엔 파격적이라 여겼다. 그 만큼 이동통신사업에서는 음성요금이 주류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LTE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데이터 소비가 많아지자, 요금제도도 음성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KT가 7일 발표한 데이터 선택 요금제가 대표적이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선 음성요금을 일정부분 포기해도 데이터 수요가 늘어나면서 매출성장을 견인시켜 주므로, 값싼 음성 무제한 요금제와 적정 수준의 데이터 요금제를 결합·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금경쟁 본격화..'소비자 가려운 곳 긁어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작년 10월 도입되면서 단순히 보조금을 쓰는 마케팅경쟁은 많이 사라졌다. 때문에 이통사 입장에서 소비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숙제를 갖게 됐다.
KT가 데이터 선택 요금제를 내놓은 계기도 통신 소비패턴의 변화(음성→데이터)도 있지만, 기존 요금제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있었다.
남규택 KT 마케팅부문장(부사장)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요금제도 불만사항을 체크해 보니 답이 보이더라"면서 "소비자들은 요금제가 너무 복잡하다, 음성통화 때문에 요금제를 선택했더니 데이터가 너무 많이 남는다, 대학생의 경우 월별로 데이터 사용량이 일정치 않아 남는 데이터가 아깝다와 같은 불만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데이터 선택 요금제다. 요금제와 상관없이 음성 통화와 문자는 무한 제공하고, 데이터 이용량에 따라 요금제도를 선택만 하면 되는 구조다.
◇KT 발표하니 SKT·LGU+도 곧 출시
KT가 7일 새 요금제를 발표하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비슷한 개념의 요금제 발표를 예고했다.
SK텔레콤 측은 "데이터 이용이 지속 증가하는 고객 이용패턴 변화에 맞춰, 지금보다 요금은 대폭 인하되고 혜택이 늘어나는 데이터 중심의 새 요금제 출시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 협의를 진행해 왔다"면서 "SK텔레콤은 인가사업자로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중이며,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미래부와의 협의가 완료되면 조만간 새 요금제를 선보일 계획이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고객의 실제 납부요금과 부합하는 요금체계로의 개편과 함께 2만원대 음성 무제한 요금제, 현재보다 저렴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출시를 준비중이라고 언급했다.
LG유플러스도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현재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은 음성이 아닌 데이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면서 "이를 반영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혜택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합리적 요금으로 음성 무제한, 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요금제를 다음주 출시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LG유플러스 역시 2만원대 음성 무제한 요금제를 비롯해 경쟁사 대비 고객혜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등을 담은 미래형 요금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한 사업자가 파격적 요금제를 선보이면서 다른 사업자도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게 되니 혜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업자의 요금경쟁 의지를 떨어뜨리는 악효과를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통신사업자가 아무리 좋은 요금제를 설계해 내놓는다 해도 다른 사업자가 금방 따라올 수 있다면 이득이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이는 결국 새로운 요금제도를 내놓을 사업자 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신규 요금제 발표에 따른 일정기간(1∼2개월) 배타적 독점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금융상품의 경우 배타적 독점권이 허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