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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주권 전쟁]①유럽, 강력한 규제 '속사정'

  • 2017.12.21(목) 15:51

까다로운 개인정보 보호정책 도입
美기업 대항 정보산업 지키려 총력
자국 검색엔진 확보 실패 '위기감'

유럽연합(EU)이 내년 5월부터 규제를 대폭 강화한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정보 주권'이란 개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럽이 까다로운 개인정보보호정책을 만든 것은 그만큼 자국의 디지털 정보산업의 체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인터넷 '공룡'에 시장을 완전히 내줬기 때문에 강력한 보호막을 세우지 않고선 정보 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디지털 가속화에 따라 갈수록 중요해지는 정보주권의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

  

 

앞으로 유럽에서 EU 시민의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한 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아주 작은 규정을 위반해도 2000만유로(한화 270억원) 혹은 이전 회계연도 기준 매출의 4% 가운데 큰 금액의 과징금을 물리게 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유럽에서 고객 데이터 수집 동의 항목을 명확히 기술하지 않는다거나 고객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고 얼마나 보관되는지 등을 명시하지 않다 적발되면 무려 8조원(2016년 연결매출 202조원의 4%)을 내야 한다.

 

유럽연합이 내년 5월25일자로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이란 까다로운 규제를 시행해서다. 이 법안은 유럽연합이 기존 제도를 손질해 만든 개선안으로 광범위하면서도 전에 없이 강력한 규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법안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사실상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겟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의 검색엔진을 비롯해 인맥구축서비스(SNS) 등 인터넷 시장을 대부분 이들이 싹쓸이하고 있어서다. 

 

◇ 유럽, 허약한 정보산업 지키려 총력

 

유럽 시민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많이 이용한다 해서 정보주권을 걱정할 정도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구글 사례를 들어보자. 구글은 검색을 기반으로 이메일(G메일)과 동영상(유튜브), 모바일 운영체제(안드로이드), 앱장터(구글 플레이)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구글은 이를 통해 이용자가 무엇을 검색하고 어느 사이트에 방문했는지, 스마트폰에 달린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해 어디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수집하고 있다.


일반 사기업이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많이 확보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수집한 빅데이터가 국경을 넘어 유럽 당국의 규제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유럽 시민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미국에 있는 구글 서버에 옮겨가기 때문이다. 만약 해킹 사고나 외부 정보기관의 도감청이 발생할 경우 유럽 당국으로선 뚜렷한 대응을 할 수 없다.


이미 구글은 길거리 사진 서비스인 '스트리트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 유럽 이용자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한 전력이 있다. 외국 기업이다 보니 유럽 당국의 규제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2013년에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전(前) 직원인 애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유럽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다. 미국 정보당국이 빅데이터 감시 프로젝트를 통해 유럽에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도감청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서다.
 

◇ 독일, 페이스북 대상 강력한 규제


유럽 개별 국가들도 정보주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자국 SNS 시장을 장악한 페이스북에 대해 전에 없던 강도 높은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독일 연방독점감독청(FCO)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이 이용자 데이터를 충분한 동의절차 없이 사용한 점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부당 사용을 막기 위한 방안을 내놓으라고 통보했다. 만약 페이스북이 규제 당국에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벌금을 부과하거나 데이터 수집을 막는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앞서 독일은 지난해 3월에도 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페이스북이 독일 SNS 시장을 장악한데 이어 이용자 정보로 광고시장까지 휩쓸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SNS 뿐만 아니라 모바일메신저 '와츠앱'을 서비스한다. 이렇게 확보한 이용자 정보를 토대로 소셜광고(SNS와 광고를 결합한 형태)를 선보이고 있는데 자칫 시장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게 독일 당국의 판단이다.

 

◇ 정보 주권, 지키느냐 뺏기느냐 

 

정보주권을 말할 때 인터넷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검색엔진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유럽의 검색시장에서 구글의 점유율은 90% 달할 정도다. 이로 인해 인터넷 업계에선 유럽이 정보주권을 빼앗긴 상태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유럽은 정보 주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자체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왔으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2005년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구글과 같은 미국 검색의 자국 진출을 새로운 형태의 문화제국주의로 규정, 자체 검색엔진인 '콰에로(Quaero)'를 만들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독일 또한 자체적으로 '테세우스'(Theseus)'란 검색을 개발했으나 역시 잘 되지 않았다.

 

인터넷 업계에선 구글의 영향력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라 앞으로는 구글 검색을 뛰어넘을 신생 서비스가 등장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구글은 세계 검색시장을 장악하면서 방대한 이용자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음성인식이나 텍스트 번역 수준이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 영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고 있다는 얘기다. 

 

네이버의 웹검색 서비스를 이끄는 김상범 박사는 "과거에는 자국어를 기반으로 한 현지 검색엔진이 외국 검색엔진에 비해 유리한 측면이 있었으나 기술의 발달로 상황이 바뀌었다"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일수록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개선되고 연관 서비스 품질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정보주권의 문제를 자국 검색엔진을 갖고 있는지 여부로 판단할만큼 갈수록 검색엔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구글에 맞서 자국 검색시장을 지키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선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줌(이스트소프트) 등 토종 서비스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구글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검색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어 토종 검색의 독주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박사는 "검색창에 텍스트를 입력해 검색하는 방식은 오래전 얘기가 됐다"며 "현재는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하거나 아마존이 만든 인공지능 스피커에다 음성을 통해 정보를 찾는 등 검색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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