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은 보편요금제가 결국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보편요금제는 문재인 정권의 '통신 기본료 폐지' 공약이 유보되면서 대안으로 나온 정책인 만큼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으며 알뜰폰 업계를 고사시킬 수 있어 실제로 시장에 도입하기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보편요금제 심의 과정을 살펴보고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
월 2만원대에 음성통화 200분·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사용할 수 있는 보편요금제가 시장에 도입되기 위한 오부 능선을 넘었다. 이동통신사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으나 결국 정부의 강행 의지를 꺾지 못했다.
다만 보편요금제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근거가 분명한데다 알뜰폰 등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 다음 단계인 국회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1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이 논의 과정에서 많이 있었던 지적이나 내용들에 대해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잘 챙겨 우려 없도록 하라는 당부가 있었다"라며 "법제처 심사과정이나 차관회의, 국회 과정에서 그런 과정들 충분히 녹여 법안이 문제 없도록 잘 다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편요금제란 현재 월 3만원 대에 제공 중인 통신서비스(데이터 1GB, 음성 200분)를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월 2만원 대에 의무 출시토록 하는 제도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란 SK텔레콤을 말한다. 정부는 SK텔레콤이 보편요금제를 내놓으면 KT와 LG유플러스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요금제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달 27일 한 차례 심의를 진행한 바 있다. 이해관계자인 이동통신사, 시민단체,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 등의 의견을 청취했으나 시간 관계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SK텔레콤측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자율경쟁 후퇴, 실적악화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SK텔레콤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도 통신사 영업권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만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통신서비스가 필수재적 성격이고 사업자간 경쟁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 및 통신사업자간의 격론이 오갔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회의는 7시간 가량 지속됐다. 이날 회의에서 전성배 국장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필수, 보편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라며 "저소득층의 경우 교육 보건보다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 어떻게 하든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통사들이 데이터 제공량을 늘리고 혜택 확대를 지속했으나 저가 요금제 구간에서 데이터 제공량이 출시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라며 "보편요금제는 생계비 부담을 경감하고 저가 차별 해소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요금제 반대측인 김도훈 경희대 교수는 "보편요금제는 매우 강력한 요금 규제 성격을 갖고 있으며 효과적일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포퓰리즘 성격이 충분히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보편요금제 배경 논리는 대통령 공약인 기본료 폐지가 무산되니까 구원투수로 내놓은 것"이라며 "정책적 목표를 갖고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논리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찬성측인 김연화 위원(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은 "경쟁을 해서 선택을 못 받으면 퇴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통신 서비스도 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으로 소비자 혜택이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통신요금이 중저가인 3만2000원~4만8000원 사이에 80%가 몰려 있다"라며 "가격 구조가 왜곡돼어 고가 요금제에 혜택이 몰려 있어 소비자가 귄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편요금제에 대한 대안으로 SK텔레콤이 지금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많은 저가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부족하다는 부분에 대해 동의하면서 보편요금제가 아니라 저가에 지금보다 더 고객의 패턴을 감안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요금제 검토를 할 수 있다"라며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하라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의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규제위 심의를 통과함에 따라 법제처를 거쳐 올 하반기 국회에 상정, 처리될 전망이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 시행이 알뜰폰 서비스에 미칠 악영향이 없도록 사업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개선해 법리적 보완을 거칠 예정이다. 다만 보편요금제에 대한 이견이 많고 위헌 소지도 제기되는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