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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이 지상파에 내는 돈, 결국 시청자 부담"

  • 2019.11.12(화) 16:47

지상파-유료방송 CPS 분쟁 피해자는 시청자
공공재 혜택 받는 지상파, 해결 위해 정부 개입 필수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 사업자 간의 재송신료(CPS) 분쟁이 결국에는 시청자들이 피해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상파 방송의 공적 영향력이 인정되는 만큼 오랫동안 계속돼 온 재송신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 개입 목소리도 높아졌다.

12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방송 콘텐츠와 시청자 복지' 세미나에서 한진만 강원대 교수는 "시청자는 지상파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이중부담을 감수하고 있다"며 "지상파 방송에 시청료와 광고료를 부담하는 동시에 유료방송에 가입해 매월 가입료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재송신료란 유료방송(케이블, IPTV, 위성방송) 사업자가 자사 가입자에게 지상파 방송을 송출한 뒤 지상파 방송에 제공하는 일종의 콘텐츠 사용료다. KBS1과 EBS는 의무 재송신 대상으로 재송신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KBS2, MBC, SBS 등은 유료 방송사업자들로부터 재송신료를 받는다.

12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방송 콘텐츠와 시청자 복지' 세미나에서 한진만 강원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백유진 기자]

재송신료는 도입 초기에는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을 해소하고 종합유선방송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여겨졌다.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사업자 서로의 '윈윈(Win-Win)'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방송의 시청률이 점차 하락하면서 광고 매출이 줄어들자 지상파 방송의 매출 중 재송신료에 대한 비중이 급격히 올랐고 점점 더 많은 재송신료를 요구했다. 이에 2012년 가입자 1인당 280원이었던 재송신료는 지난해 기준 400원까지 올랐다. 

이와 달리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이 하락하고 중요성이 낮아진 만큼 재송신료도 이에 맞춰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사는 유료방송에 지속적인 재송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8VSB(8-Vestigial Side Band)' 가입자에도 재송신료를 요구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8VSB는 아날로그TV 이용자가 셋톱박스 없이도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아날로그 시청자가 디지털 환경에서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복지 정책의 일환이다.

한진만 교수는 "8VSB는 아날로그와 동일한 수준의 요금으로 책정돼 있으나 8VSB 상품 가입자에 대해 재송신료를 부과하면 상품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8VSB에게도 재송신료를 적용하면 결국 가입자들의 가입비를 인상하게 하는 역효과를 초래하는 셈"이라고 짚었다.

뿐만 아니라 유선방송사업자들의 가입자 및 매출액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송신료까지 증가하게 되면 방송사업 운영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유선방송 사업자들의 운영난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도 제한하게 된다. 

현재 유선방송 사업자들은 매출의 대부분을 홈쇼핑 송출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다. 채널 번호 30번까지 중 12개가 홈쇼핑 또는 T커머스 채널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다. 그만큼 유료방송에게 홈쇼핑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채널 선택권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유료방송의 홈쇼핑 송출 수수료 의존이 시청자 채널 선택권 제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12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방송 콘텐츠와 시청자 복지'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백유진 기자]

이날 토론에 참석한 김순복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처장은 "홈쇼핑사들의 송출료는 납품업체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결국 제품 원가에 적용돼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며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료 인상이 결국 소비자의 가격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TV가 더 이상 가족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현 상황에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면 결국에는 TV 프로그램에 대한 외면으로까지 갈 수 있는 부분"이라며 "정부에서 개입해 원가 산정이 정확히 이뤄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희 숭실대 교수는 현 상황을 "상품의 품질은 오르지 않는데 상품의 가치는 올려달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지상파 방송은 스스로를 과대평가 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낸 세금과 가치가 높은 주파수를 무료로 받았음에도 콘텐츠 가치를 높이는 것보다는 재송신료를 높이려는 노력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특히 토론자들은 소비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우선 파악한 뒤 대응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면서 정부의 적극 개입에도 한 목소리를 냈다. 

홍종윤 서울대 박사는 "시청자들이 무료로 본다고 생각했던 지상파 방송에 사실상 돈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결국에는 소비자 피해로 올 수 있는데도 정책 기관에서 대응을 못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언급했다.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상임고문도 "소비자들은 지상파 방송에 시청료, 광고비, 수신료를 다 내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해결은 유료방송 사업자에 맡기고 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재송신 수수료를 사업자간으로 남겨줘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직접 콘텐츠를 심사해 재송신료 산정 기준을 만들고 이를 정확히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신호철 팀장은 "지상파는 국민의 자산인 주파수를 무료로 사용하는 등 수많은 공적인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재송신료 거래는 사적 거래라고 주장한다"며 "지상파 방송은 국민 모두가 봐야 하는 공적 채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쟁에도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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