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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겪은 스마트폰이 멈춘 어느 날

  • 2020.07.30(목) 17:25

[디지털, 따뜻하게]
반나절 통신두절 속수무책 '디지털 치매'까지
디지털 의존도 높아지는 사회, 사고 대비해야

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사고 커피를 주문하는 세상은 참 편리하죠. 하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는 노화하는 우리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릅니다. 지금은 쉬운 기술이 나중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으로 커피를 살 때 쌓이는 정보는 빅데이터가 되어 서비스에 반영되고 궁극적으로는 법·제도 개선까지도 이어지지만, 현금으로 커피를 사는 사람의 정보·의견은 외면됩니다. '디지털 정보격차'는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디지털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는 [디지털, 따뜻하게]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2014년 3월20일 오후 6시 무렵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퇴근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프로포즈를 계획한 날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거의 '흙비'가 내렸습니다. 봄비가 갈색이라니.

"아, 이것은 나의 미래인가!"라며 탄식하는 것은 잠시였습니다. 황사에 젖은 꼴로 프로포즈를 하는 것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때부터 6시간 동안 스마트폰 통신이 두절됐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문자 메시지, 모바일 메신저, 전화 등의 수단을 이용해 '어디쯤까지 왔다, 어디 앞에 도착했다, 너는 어디니' 등의 대화를 계속 주고받으면서 만나지만, 이때는 약속한 장소에서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장소가 최종 목적지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요. 깜짝 프로포즈를 계획하면서 어느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만나자고 한 터라, 아내가 어떤 버스를 타고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기다림 끝에 겨우 만났습니다.

문제는 더 있었습니다. 당황한 탓인지 예약한 레스토랑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겁니다. 평소 같으면 스마트폰에 남은 기록을 찾아 링크만 누르면 됐으니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겁니다. 이런 걸 '디지털 치매'라고 하죠. 디지털에 너무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현대인의 '문제'입니다.

아무튼 스마트폰이 먹통이라 인터넷 검색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나서 식당에 앉기까지 거의 2시간을 훌쩍 날렸던 기억입니다.

제가 겪은 통신 두절은 언론 보도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보도와 법원 판결 자료 등을 보면 한 통신사가 가입자 확인모듈 서버(HLR Home Location register) 관리 소홀로 2014년 3월 20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약 6시간 동안 가입자 560만명에게 통신 불통 사태를 일으킨 초대형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피해 보상금으로 딱 1828원을 받았는데요. 저야 뭐 평생 간직할 소중한 기억을 망치기 직전까지 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다른 경우 생계에 미친 영향도 컸을 겁니다. 정보통신기술(ICT)에 의존적인 경제 생태계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죠.

기자가 2014년 3월 통신 두절을 겪은 이후 받은 일종의 보상금. [사진=김동훈 기자]

참여연대는 "특히 큰 피해를 당한 이들은 대리기사, 퀵서비스, 콜택시, 음식배달업 등에 종사하는 국민들이었다"며 "이들은 휴대전화를 생계를 잇기 위한 필수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생계 뿐만 아니라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통신이 두절됐다면 참으로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을 겁니다.

이런 일은 과거의 사건도 아닙니다.

최근에도 코로나19의 대확산 및 장기화로 '긴급재난문자'가 일부 휴대폰 이용자에게 발송되지 않았던 문제가 다시 드러났습니다. 수년 전 경주·포항 지진 당시에도 제기됐던 문제였죠.

긴급재난문자 수신기능(CBS)이 탑재되지 않은 2G·3G 휴대폰을 쓰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4G폰 일부도 제조사가 해당 기능을 넣지 않아 수신이 안 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작년 5월 기준 205만9000대 정도의 휴대폰은 긴급재난문자를 수신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가 아직도 구식폰을 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시스템이 이렇게 구성된 게 문제 아닐까요.

잊을만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디지털 대전환, 디지털 뉴딜이 국가적 과제처럼 인식되는 시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디지털은 덩치를 키우고 있는데, 비대면이 요구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속도가 더욱 붙었고, 정부는 정책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에 의존하는 수준이 커지면 커질수록 어느날 갑자기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통신 두절, 재난문자 수신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이용하는 온라인 서비스 대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스마트폰에 넣은 운전면허증, 내비게이션 앱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전면 디지털로 전환하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와 기업이 디지털이 야기할 수 있는 사고에도 민감하게 대비하길 기대해봅니다.

▷편리했던 디지털의 역설, '디지털, 새로운 불평등의 시작'
http://www.bizwatch.co.kr/digitaldiv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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