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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카카오]구속된 브라이언…벽 만난 '벤처 신화'

  • 2024.07.23(화) 14:45

카카오 키운 벤처 1세대, 사법리스크 직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사내분위기 '당혹'

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아온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카카오의 '초고속 성장'을 일궈 온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 22일 검찰에 구속됐다. 김 위원장은 카카오톡으로 메신저 판도를 바꾼 벤처 신화의 주역이지만,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과 지인을 주요 경영진에 앉힌 '브라더' 경영 등으로 카카오의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 위원장은 사명 빼고 다 바꾸겠다는 비상한 각오로 경영쇄신의 칼을 꺼내들었지만 검찰의 칼끝을 피하지 못해 제동이 걸렸다.

'흙수저 신화' 김범수…'브라더' 독 되다

김 위원장은 '흙수저 신화'를 일궈낸 대표적인 스타트업 창업가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같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삼성SDS에서 근무하다 한게임을 창업했다. 이후 이 창업자와 함께 NHN(현재 네이버 전신)을 만들었으나 NHN에서 퇴사하고, 스타트업 '아이위랩'을 설립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하면서 지금의 카카오를 탄생시켰다.

카카오는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다.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쇼핑·게임·금융·택시·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창업자를 '브라이언'(김 위원장의 사내이름)으로 부르는 탈권위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해왔다. '100인의 CEO'를 키우겠다는 김 위원장의 경영철학 아래 각 계열사 대표가 자율적으로 경영하면서 조직을 키웠다. 김 위원장의 측근, '내 사람'을 요직에 앉히는 '브라더 경영'도 빠른 성장의 바탕이었다.

그러나 대기업이 된 카카오에서는 이러한 경영기조가 '독'이 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과도한 계열사 확장과 더불어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의 '쪼개기 상장'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어 류영준 전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카카오페이 상장 후 스톡옵션을 대량 행사한 것이 알려지면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문제가 됐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분식회계 의혹, 카카오가 구축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과 가상자산 '클레이'(KLAY) 관련 의혹도 줄줄이 꼬리를 물었다.

2022년 10월 카카오톡의 서비스 장애를 부른 데이터센터 화재 등 대형 악재도 겹쳤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부진한 계열사의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업계의 택시수수료 갈등, 카카오헬스케어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기술 탈취 분쟁도 모두 최근 몇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조종 의혹이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을 사법 리스크에 몰아넣었다.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설립했다. 'CA협의체'를 신설해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고, 계열사 대표를 물갈이하며 고강도 경영 쇄신에 나섰다. 그러나 "사명까지 바꾸겠다"며 쇄신을 진두지휘했던 김 위원장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이마저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예상 뒤엎은 구속…"경영공백 최소화"

앞서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을 비롯한 카카오 경영진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카카오 판교아지트 소재 카카오그룹 일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8개월 후인 지난 9일 김 위원장을 비공개로 소환해 20시간에 달하는 밤샘조사를 이어갔고, 이로부터 8일만인 지난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지난 18일 임시 그룹협의회에 참석해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어떠한 불법 행위도 지시하거나 용인한 적 없는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는 판사 출신을 비롯한 변호인단을 꾸려 혐의를 부인했다.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카카오 내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카카오 그룹 안팎으로 범죄 혐의를 소명할 만한 '핵심 증거'가 없다면, 도주 우려가 적은 김 위원장의 구속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카카오 때리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검찰이 갖고 있는 증거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정황만으로는 구속하기 어려울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는 구속 기소됐으나 지난 3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카카오 측은 23일 입장을 내고 "현재 상황이 안타까우나, 정신아 CA협의체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관계자는 "준법 시스템 확립과 사회적 신뢰 제고라는 본연의 역할을 흔들림 없이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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