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등 일부 바이오기업의 '잭팟' 사례를 제외하면 국내 바이오 산업의 현실은 암울합니다. 창업, 투자를 시작으로 바이오산업 생태계 전반이 붕괴를 걱정하는 단계입니다. 비즈워치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실을 짚어보는 동시에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수도권의 한 지식산업센터 건물에 입주한 바이오텍 A사. 6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대표 1명과 파트타임 관리직원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때 20명이 넘었던 연구원은 모두 떠났다. 회사에 남아있던 자금은 사실상 바닥났다. 이 회사 대표는 "폐업하려고 해도 투자자와 협의, 진행중인 정부 과제 탓에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회사가 수년간 어려움을 겪으면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지만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국내 다수의 바이오기업이 폐업과 같은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2021년 본격화한 바이오투자 시장 한파가 지속되면서 비상장 바이오기업들에서는 사실상 폐업 수준인 '좀비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의 기회(?)를 잡은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경기 등 국내 주요 바이오클러스터의 비상장 바이오기업 다수가 경영난에 시름하고 있다. 바이오투자 시장의 어려움이 장기화하면서 자금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코로나 특수로 수백억원의 자금을 끌어들였던 B사는 현재 연구인력 전원을 구조조정했다. 한때 장외 시총 수천억원대를 호가했던 C사는 수백평 규모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전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본사 규모를 크게 줄여 대학 연구실이나 정부 공유연구실로 이전한 기업들도 다수다. 그러다보니 호황일 때 유지됐던 바이오인력 구인난은 자연스레 구직난으로 변화한 상황이다.
한 정부 R&D기관 관계자는 "기업과 정부가 연구비를 분담하는 매칭과제에선 기업들이 5~30%에 이르는 매칭자금이 없어 연구비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었다"면서 "기업 실사를 나가게 되면 대표자, 직원 1인이 큰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이 본다"고 말했다.
호황 때 창업기업 1000여곳..바이오투자·IPO는 뒷걸음질
바이오 산업의 위기는 무엇 때문에 찾아온 것일까. 호황기 때 우후죽순 창업한 기업은 많은데 비해 투자나 IPO가 이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차 바이오 붐이 시작된 2015년부터 붐이 꺾이기 시작한 2021년까지 창업한 바이오 기업은 2700여곳에 달한다. 이 중 1000여곳이 투자가 필요한 신약, 진단 관련 기업으로 추정된다.
창업 기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투자 및 IPO 시장은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형국이다.
바이오의료분야 신규 벤처투자액(벤처캐피탈협회)은 2019년 1조1033억원에서 2020년, 2021년 각각 1조1970억원, 1조6770억원까지 늘었다. 2021년을 정점으로 감소한다. 2022년 1조1058억원, 2023년 8844억원 2024년 8914억원(11월 기준)에 그쳤다.
창업한 바이오기업들이 시리즈A에서 B, C 투자를 받는 단계로 성장하면서 R&D 비용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기업들이 유지하려면 벤처투자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야만 하는 구조다.
국내 산업 특성상 거의 유일한 엑싯(EXIT) 창구인 기업공개 역시 늘어난 창업기업들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2018~2020년까지 각각 15, 14, 17곳을 유지한 기술특례 바이오기업 상장 수는 2021년, 2022년, 2023년 10곳, 10곳, 8곳으로 급감했다. 2024년에는 16곳으로 다소 늘었으나 신약개발기업은 4곳에 불과했다.
신라젠(엠투엔), 천랩(씨제이제일제당),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제넥신), 바이젠셀(가은글로벌), 에빅스젠(디엑스앤브이엑스) 등 M&A는 늘고 있지만 시장을 수요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바이오기업의 위기 원인은 금리 인상, 글로벌 경기침체 등 외부적 요인과 성과 부족, IPO 시장 위축 등 내부적 요인 등으로 복합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오기업 옥석 가리기를 넘어 투자 기피 현상이 만연하다는 것이 문제다. 방사성 의약품, 인공지능 신약개발은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분야도 국내에서는 외면받고 있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바이오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VC는 한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어렵게 투자를 추진하더라도 내부 투심위원과 LP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일도 빈번하다"라고 전했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무분별한 창업과 투자에 대한 옥석 가리기는 필요하며 경쟁력 없는 기업이 퇴출당하는 것 역시 마땅하다"면서 "하지만 지금 현실은 도전의 기회마저 원천 차단 당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