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미국 내 대규모 투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미국외 생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부과 검토 등 갈수록 강화되는 보호무역 흐름에 맞선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노바티스·로슈에 日 후지필름까지 "美 생산시설 확보"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노바티스, 로슈, 일라이릴리, 미국 MSD, 존슨앤드존슨, 후지필름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 등이 잇달아 미국내 의약품 생산시설 건립 등을 포함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하고 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노바티스는 최근 미국 내 10곳의 제조 및 연구개발(R&D) 시설을 건설하고 확장하는데 5년간 23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바티스는 특히 6곳의 의약품 생산시설 및 1곳의 연구개발 허브를 신설한다. 노바티스측은 이번 투자를 통해 의약품 공급망과 핵심 기술 플랫폼을 이전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의약품을 현지에서 자체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또 다른 스위스 기반 다국적제약사 로슈도 미국 내 생산 및 연구개발(R&D) 시설 확대, 인프라 확충에 향후 5년간 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차세대 비만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의료기기 생산시설 신설과 AI 기반 신약 연구센터 구축 등 전방위적인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라이 릴리는 향후 5년간 미국에서 270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4곳의 신규 제조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SD(미국 머크) 역시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새로운 상업화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9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후지필름 다이오신스바이오테크놀로지도 북미 지역 최대 CDMO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후지필름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홀리스프링스(North Carolina(NC) Holly Springs)에 20억달러를 투입해 CDMO 생산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 리제네론파마슈티컬스가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후지필름과 10년간 30억달러에 이르는 의약품 제조 및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美 관세정책 대응…현실화 가능성엔 '물음표'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정권의 관세정책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취임하자마자 미국 내 의약품 생산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미국 외 생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그는 특히 미국 내 의약품 제조업체들이 해외 생산을 통해 세금과 일자리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관세 부과가 국내 생산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 자금을 받는 기관은 중국의 특정 생명공학 기업들과 거래를 금지하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미국 정부가 의약품 가격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한 IRA법(Inflation Reduction Act)에 이어 트럼프 정부의 의약품 관세 정책까지 구체화되면서 대형 제약사들도 미국 중심주의, 우선주의라는 새 질서에 맞는 대응이 불가피해졌다.
다만 이들의 투자가 발표 내용 대로 집행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일부에서는 발표용 투자계획이라는 평도 나온다. 당장 미국 내 부지를 확보해 생산시설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 막바지 혹은 다음 정권에서나 가동이 가능하다.
관세 등 의약품에 대한 정책이 폐기되거나 수정되고 새로운 정책이 나올 시기다. 미국제약협회(PhRMA)도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제조시설을 짓기 위해선 까다로운 규제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5~10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미국 내 생산시설 운영은 비용 효과적이지 못하다. 노바티스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내 7개 제조시설을 폐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정한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해외 생산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약가 인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약가 인하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관세정책은 이러한 약가 인하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기에 결국 절충점을 찾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제약협회는 보고서에서 의약품 수입에 2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내 의약품 비용이 연간 약 510억 달러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소비자 가격의 최대 12.9%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의약품 CDMO기업 관계자는 "빅파마들의 발표대로 투자가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면서 "다국적제약사들의 미국 내 투자가 당장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미국 의약품 관세정책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예의주시하면서 현실적 대응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