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집단들의 부실사태와 도덕적 해이를 보면서, 신병 훈련 직후 군 운전교육대에서 추위와 구타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반복하여 들은 운전수칙 두 가지가 떠올랐다. 내 삶의 교훈으로 남아 있는 하나는 무엇보다 먼저 "브레이크를 항시 점검하라"였고, 다른 하나는 "차선은 미리미리 바꾸어라"였다. 기업 경영이나 가계 운용에서도 변화의 방향을 읽고, 멈추거나 물러설 때를 알아야 낭패가 없다.
# 속도가 빠른 도로에서 미리 미리 차선을 바꿔야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예컨대, 고속도로 나들목 같은데서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면 미처 방어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불의의 사고가 날 수 있다. 변화가 빠른 사회는 고속화도로와 다름없어 언제 어디서 뜻하지 않게 충격이 올지 모른다.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읽지는 못하더라도, 앞을 내다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고급인력들이 큰 돈을 들여 지진과 화산을 연구하는 목적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경보를 울리는데 있다.
# 우리가 자칫 잊기 쉬운 일이지만 차 성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때 제자리에 정지할 수 있는 제동장치다. 달리는 것은 좀 늦게 달려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제 때 멈추지 못하면 만사를 그르칠 수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브레이크가 잘 작동되어야 엎친 데 덮치는 불행한 사태를 막고 나름대로 `연착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불확실성이 다가오고 있는데, 저 잘난 맛에 허풍과 고집 부리면 어찌 재앙을 피할 수 있겠는가?
1990년대 말 금융·외환위기는 브레이크를 제 때 밟지 못하였고 차선도 바꾸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덩치가 커지면 기업 도산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커지므로 (정부에서) `구제금융`을 퍼부을 것이라 오판하고 과잉투자에 대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라는 전시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상수지 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저환율을 고집하였다. 날개 달린 환율은 저만치 날아 나가는데, 가뜩이나 모자라는 외화보유고를 가지고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허공에 대고 구멍 난 잠자리채를 휘두른 꼴이었다.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도 제동장치 점검과 차선 바꾸는 일을 중시하지 않고 눈앞의 실적과 수치에 집착하는 단기업적주의에 빠지면 불행을 피해가기 어렵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예방조치를 하는 보석 같은 일을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는 그저 사달이 난 후에야 야단법석을 하며 땜질을 하는 일이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호미로 막을 일을 늑장을 부리다가 가래로 막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웃지도 못할 넌센스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원칙과 먼 생각을 가지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한낱 이상주의자로 폄하되는 일도 흔히 생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정말 안 될 일이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든 그저 `하면 된다`는 독선이 브레이크를 제 때에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앞을 내다보지 않으려는 근시안적 자세 때문에 차선을 미리미리 바꾸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일찍 성공하거나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빠지면, 오히려 더 변화의 방향을 읽지 못하고 자기만족 나아가, 자기기만(self deception)에 빠지기가 쉽다. 기업은 사양 산업, 부실기업에 매달려 금융비용만 지불하다가 국가와 사회에 큰 피해를 끼치고 매몰되거나, 가계는 썩은 주식이나 부도 위험에 처한 채권을 꽉 붙잡고 있다가 노후자금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무릇 모든 일이 그렇듯이 앞으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머무를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다"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