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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자와 내부고발자의 사이

  • 2014.03.24(월) 11:36

조직 내부의 부정, 비리를 과감하게 신고하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 한국 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신변안전 장치는 미흡한 편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이들을 적극 보호하려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나섰다.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끼리끼리 편을 가르며 특별이익을 은밀하게 나누어 가지려는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일이 오히려 배신행위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이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어쩔 수 없이 유언비어가 떠돌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이름을 내걸고 잘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공동체 정신은 실종되고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음해하는 투서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투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기는 아직 멀었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단을 내리고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을 보호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밀고자라는 멍에를 씌워 수렁에 빠트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우사태`처럼 미국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친 엔론(Enron) 사태를 보자. 에너지 기업 엔론은 포천지로부터 1996년부터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비즈니스위크지가 올해의 에너지 기업으로 뽑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계회사와의 허위, 내부거래를 통하여 장부상의 이익을 부풀리고 그 사이에 정작 CEO는 자기주식을 내다 파는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다. 외부에서 보는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이면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만약 거짓과 부정을 바로 잡으려고 호루라기를 힘차게 부는 내부고발자가 제 때에 나타났다면 파장이 그리 크지 않았고 `일류기업` 엔론 주주들의 손실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최고경영자가 종신징역형을 선고받는 일도 막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 이후 `호루라기 부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장려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직하고 용기 있는 시민만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이웃이 잘못하였을 때 속으로 욕하지 말고, 잘못한 점을 지적하여 바로잡도록 할 의무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있다는 의미다. 바로 이것이 근대 서구사회 시민정신의 기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잘잘못을 당사자 앞에서 정당하게 가리거나 지적하지 않고, 뒤에서 이리저리 꾸미고 비난하는 자를 어찌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한때 프로복싱 유망주였으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부두노동자로 전락한 테리(말론 브란도)는 악덕 노조위원장이 저지른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부두노동자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의 성직자 배리 신부(칼 말든)가 양심에 호소하며 설득하자 테리는 번민한다.

진실을 증언하면 오히려 밀고자로 매도당하여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하자니 억울하게 죽은 자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다. 방황을 거듭하던 테리는 "그 놈의 양심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절규하다가 마침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다. 더러운 밀고자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내부고발자가 된 셈이다.

1950년대 영화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에 나오는 미국 `하류 사회`의 양심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밑바닥(?) 인생들도 몸부림치며 지키려한 그 거역할 수 없는 자부심이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춧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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