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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얼음(淚氷)'으로 식힌 무더위

  • 2014.07.18(금) 08:31

 

양귀비는 지금 기준으로는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풍만한 체형 때문인지 여름이면 더위에 몹시 시달렸다고 하는데, 여름철에는 옥으로 만든 물고기를 입에 물고 그 서늘한 기운을 삼키며 땀을 식혔다. 함옥연진(含玉嚥津)이라는 고사다.

옛날 막가는 제왕과 권력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무더위를 식혔다. 한나라 때 천록각외사(天祿閣外史)에는 한왕(韓王)이 여름이면 차가운 음식을 찾아 세자가 사재를 털어 얼음 방을 만들어 음식과 반찬을 그곳에 저장해 얼린 후 왕에게 바쳤다고 기록했다. 2000년 전에 이미 아이스박스를 만들어 음식을 차게 보관했던 것이다.

고구려에 패해 멸망한 수양제는 여름에 얼음 없이는 살지 못했던 모양이다. 미루기(迷樓記)라는 당나라 문헌에는 수양제가 말년에 주색에 빠져 화려한 궁전을 짓고 아리따운 궁녀 수천 명과 음란하게 놀았다고 나온다. 여름이 되자 수양제가 더위에 지쳐 얼음 음료 100잔을 마셔도 갈증이 그치지 않아 의사가 곁에다 항상 얼음을 두고 지내도록 했는데 이를 본 궁녀들이 앞 다투어 얼음을 사들여 쟁반에 올려놓으며 은총 입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당나라 때는 얼음 조각으로 더위를 식혔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의 아이스 카빙(Ice carving)이 이 때부터 등장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양귀비의 오빠로 당 현종이 중용했던 양국충의 아들이다. 왕인유(王仁裕)가 당 현종 때의 진기한 이야기를 적은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라는 책에는 양국충의 아들이 해마다 여름이면 장인을 시켜 봉황과 동물 형상으로 얼음을 조각한 후 금띠로 장식을 해서 왕공과 대신들에게 보냈는데 사람들이 그 옆에서 술을 마시며 여름에도 추운 기색을 보였다고 적혀있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는 현대인들보다 여름을 더 시원하게 보냈던 것인데 추운 겨울을 넘기는 모습도 난방을 강하게 틀어 반팔 옷을 입고 지내는 요즘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은 겨울철 바람 부는 날에 외출을 할 때는 여자 비첩 중에서 살이 있는 여자를 골라 길 앞뒤로 걷게 해 바람을 막았는데 몸으로 진을 친다고 해서 육진(肉陣)이라고 했다.

당 현종의 동생인 신왕(申王)은 해마다 겨울철에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추운 날이면 기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앉아 있는 주변에 둘러서서 인간 병풍을 치도록 해 추운 기운을 막는 인간 난로로 삼았다. 기녀들로 장막을 쳤다고 해서 기위(妓圍)라고 불렀다.

역시 당 현종의 동생인 기왕(岐王)은 손난로라는 뜻의 난수(暖手)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기왕은 겨울이면 10-20대의 꽃다운 나이의 여자를 곁에 두었다가 손이 시리면 난로를 쬐지 않고 여인의 가슴 속에 자신의 손을 넣어 따뜻하게 녹였다.

겨울에 인간난로가 되어야 했던 여인이나 몸으로 차가운 바람을 막아야했던 여자들도 가엾고 안타깝지만 권력자들이 여름에 추위에 떨며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한겨울에 강에서 얼음을 캐야했던 남자들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옛날에는 얼음을 한강변에 살며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백성의 눈물이 얼어붙은 것이라고 해서 '누빙(淚氷)'이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면 누빙으로 여름을 즐겼던 막장의 권력자들은 모두 뒤끝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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