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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양반의 가을 별미, 배춧국

  • 2014.11.07(금) 07:35

 

 

서울의 전통 늦가을 별미는 배춧국이다. 요즘 사람들이 가을이면 전어를 먹으며 “집 나간 며느리가 어쩌고저쩌고...” 수다를 떨 때 예전 한양의 지체 높은 양반들은 늦가을 이른 아침, 맛나게 끓인 배춧국으로 밤새 빈속을 달랬다.

 
토장(土醬) 풀어 끓인 된장국에 속이 꽉 차도록 실하게 영근 노란 배춧속을 넣고, 푹푹 고아 끓인 배춧국은 한양의 가을철 별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끓였다는 배춧국, 효종갱(曉鐘羹)이다.
 

효종갱은 여명을 알리는 새벽종인 효종이 울릴 무렵, 북촌 양반집에 배달되었기에 생긴 이름이다.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하루 종일 끓인 배춧국을 항아리에 담은 후 식지 않도록 꽁꽁 동여 싸서 한양까지 100여리 길을 밤새 걸어 새벽에 도착했으니 그 정성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북촌 양반들이 가을 내내 효종갱, 배춧국을 대놓고 먹은 이유를 알 수 있다.

 
효종갱의 내력이 실린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질 좋은 배추에 꽉 들어찬 노랗게 익은 배추 속대를 주요 재료로 여기에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과 소갈비, 소 양지머리, 사골과 해삼, 전복을 더해서 토장을 풀어 하루 종일 끓여 익힌다고 했으니 웬만한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효종갱과 같은 고급 배춧국은 부자들만 즐기는 특별한 음식이었을 것 같지만 굳이 그런 것만도 아니다. 1931년의 신문에 실린 서울의 배춧국 끓이는 법을 보면 배춧국이 그렇게 만만한 음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토장을 거른 후에 기름진 고기와 곱창을 넣고 끓이다가 다시 배추 속과 계란, 정육을 썰어 끓인 후 파와 깨소금, 후추를 넣어 먹는다고 했으니 단순한 배춧국이 아니었다.

 
서울에는 배춧국의 종류도 다양했다. 된장과 고추장을 체에 곱게 거른 후 쌀뜨물에 풀어 맑은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다 소고기와 솎은 배추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솎은 배춧국(稚菘湯)이 있고, 속이 꽉 찬 배추의 노란 속대를 토장국에 넣고 끓인 배추 속대국(菘心湯),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토장국에다 연한 배추 이파를 넣어 끓인 보통의 배춧국도 있었으니 배춧국을 서울의 특산 별미로 꼽을만 했다.

 

배춧국이 서울의 별미로 발달한데는 까닭이 있다. 옛날에는 서울과 경기가 질 좋은 배추의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해동잡록(海東雜錄)에도 한양 성문 밖은 배추 재배지로 동대문 근처 훈련원 자리에서 키운 배추는 왕실과 양반집에서 웃돈을 얹어주고 살 만큼 품질이 최고였다고 하고 새벽종이 올릴 무렵 북촌에 배달됐다는 효종갱을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공급했던 이유도 구한말에는 지금의 경기도 성남과 광주 남한산성 일대가 질 좋은 배추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철에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팔리는 배추의 70%가 경기도 광주에서 키운 것이었다. 

   
서울에서 배춧국이 발달한 이유가 또 있다. 된장국에 배추 이파리 넣고 끓인 평범한 배춧국은 처음부터 서민음식이었을 것 같지만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배추는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썼을 만큼 귀한 음식재료였다. 그러니 돈과 권력이 모여 있는 한양에서 귀한 채소인 배추로 끓인 배춧국이 발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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