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길을 가다 문득 발을 멈추게 하는 향기.
서울 양재동 여고 뒷문 후미진 골목, 젊은 바리스타의 커피 사랑은 오늘도 변함없이 커피 볶는 일로 시작한다.
박태정 바리스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프로야구 신인으로 지명될 만큼 유망한 야구선수였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야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방황을 거듭하다 운명처럼 커피를 만났다.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커피에 빠져들었다. 로스팅(커피 볶는 일)을 하느라 잠도 안 잤다. 한 번은 커피 볶는 연기가 너무 심해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최고의 커피맛을 찾기 위해 1년 동안 5000번이 넘는 로스팅을 했다.
그는 상식 밖의 외골수다. 어떤 손님이든 원하는 커피 맛을 찾아줘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결국, 집을 팔아 커피 생산지로 향했다. 8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커피나무 심기에서 원두 말리기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배웠다.
19평 남짓한 카페 주인의 커피 사랑은 그만큼 유별났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맛있어요”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 좋다고.
아메리카노 한잔의 가격은 2500원. 본인의 인건비 정도만 겨우 건질 수 있는 수준이다. 돈 벌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카페 수입의 80%가 아메리카노에서 나온다는 자랑이 돌아왔다. 그만큼 커피 맛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맛 좋은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마다 원두의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커핑테스트를 갖는다. 같은 원두라도 그날 온도와 습도에 따라 커피 맛은 변한다. 각각 다른 원두를 혼합하는 블렌딩 방식만 달라져도 커피 맛은 천차만별로 바뀐다. 커피의 매력은 그만큼 무한하다.
작은 카페 주인치곤 어울리지 않는 커피 사랑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보상으로 다가왔다. 이달 말 밀라노에서 열리는 ‘OUT OF THE BOX 2015’에 초청받았다. 세계 최고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인 라마르조코가 주최하는 국제 행사에서 전 세계인에게 커피 맛을 알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단풍 물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가을 하늘 아래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눈을 지그시 감고 10초만 여유를 느껴보자. 그러면 마음의 속삭임이 들릴 수도 있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