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늦가을이 짙은 캠퍼스는 참 아름답다. 잎이 바뀌고, 그 바뀐 색으로 짙은 가을을 느낀다. 볼 수 있다는 건 큰 선물인 듯하다.
시각장애인인 가현욱 박사가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캠퍼스를 찾았다. 가현욱 박사는 현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재활과학&기술학과 교수다.
지금은 과학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찾는 이들도 많지만, 그의 과거는 마치 불행 선물세트와 같았다. 시각장애를 가진 부모님을 둔 가 박사는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생활하다가 5살 때 장애인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청소년 시절 그에겐 꿈조차 사치였다.
가현욱 박사는 체념으로 얼룩진 청년시절을 보냈다. 장애도, 불우한 환경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주제 파악이나 하면서 가만히 지내라는 충고를 따라서 스스로를 불량상품으로 여기면서 주저앉아 있었다.
불량상품 가현욱 박사는 26살이 되던 해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가 세상의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인생을 허비한다는 게 더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탈출을 시도했다. 환경은 그대로였다. 다만 생각을 바꿔 소망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했고, 그해 연세대학교 인문학부에 합격했다. 앞을 볼 수 없어 수업내용을 녹음하고 기숙사에 돌아와 듣고 또 들었다. 그만큼 공부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뜩 시각장애인들이 조금 더 쉽고 편하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했고, 그렇게 해서 점자 디스플레이가 세상에 나왔다. 가현욱 박사는 2008년 유학을 떠나 5년 만에 미국 피츠버그대학 재활공학 박사가 됐다.
가 박사에겐 장애도, 불우한 환경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말한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안에 있더라도 소망을 놓지 마세요. 저 같은 사람도 그 길을 걸었고, 결국 빛이 비치는 터널 밖으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