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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의 속사정]카톡감옥…저녁이 없는 삶

  • 2016.08.10(수) 16:29

전문직·공무원도 퇴근 후 "카톡!"
'CYOD' '안티스트레스법' 등이 대안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7월 발표된 'DOC와 춤을'이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당시만 해도 청바지 출근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많은 기업이 복장은 물론 회의와 업무방식, 야근, 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근대적 직장 문화 또한 여전하다. 이제 막 직장 생활에 적응한 '김 대리들`의 고민을 들어본다. [편집자]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는 유성실(40세) 차장은 오늘도 밤 늦게까지 해명자료 작성에 매달린다. 회사가 낸 실적 자료에 오류가 생긴 탓이다. 초안을 작성하고 부장에게 카톡으로 보고를 올리자 일단 대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대기 중… 이제는 기자들로부터 카톡이 날아든다.
 
'홍보맨' 유 차장처럼 대외업무가 많거나 외근이 주된 직종일수록 '퇴근 후 업무 카톡'에 많이 시달린다.
 
근로기준법 제58조는 근로시간 중 자유도가 높은 업무를 '재량근로의 대상업무'(같은 법 시행령 제31조)로 규정해 근로시간에 규제를 두지 않고 있다. 기자와 PD, 연구자 등이 이에 속해 이들은 근로시간을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정한다. 
 
유 차장 같은 홍보업계 직장인은 근무시간이 따로 없는 기자를 주로 상대하는 탓에 이들과 처지가 비슷하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 kym5380@
 
노동법 전문가들은 카톡 업무 지시가 개인 스마트폰에서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해 관련 대안을 찾고 있다. 이른바 BYOD(Bring Your Own Device)로 인한 '자기 착취'에 대한 해소 방안이다. BYOD란 근로자가 회사(사용자)가 제공한 것이 아닌 자신이 소유한 기기를 업무에 쓰는 것을 말한다. 개인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BYOD는 근로자의 업무와 여가시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여가시간 중에도 업무상의 연락을 받도록 만든다"며 CYOD(Choose Your Own Device)의 활용을 제시했다. 그는 "CYOD는 회사로부터 제공되면서도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기에 대한 사용범위를 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 전문직에게도 '카톡감옥'은 남의 일이 아니다. 빅4 회계법인 중 한 곳에 다니는 4년차 시니어 회계사 박씨, 야근을 마치고 집에 막 도착했는데 '카톡!'이 울린다. 클라이언트와의 저녁 자리에 들르라는 파트너의 지시다.
 
평소 "'클라이언트의 비상(非常)'이 네 비상"이라는 선임의 말이 떠오른다. 그때만해도 박 회계사는 술 자리 콜까지 비상으로 봐야 하는 줄 몰랐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면서 입사 전 선배들로부터 들은 "집 가까운 회사가 최고"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실감한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지난 6월 이른바 '퇴근 후 업무카톡 금지법'을 발의했다. "근로시간 외 시간에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관련 지시를 내려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 공동발의자에는 같은 당 표창원, 우원식, 김현미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은 실효성이 의문시 되지만, SNS 보편화로 인한 근로자의 사생활 침해를 '선언적'으로나마 금지(연결되지 않을 권리 ; Right to disconnect)해 두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신 의원은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여줄 2차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도 준비 중이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라며 "검토보고서가 나오는대로 공청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2차 법안에는 근로시간 외 '카톡 업무 지시'가 실제 업무로 이어질 때 어떤 기준에 따라 보상할지 등을 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간에 견줘 높은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는 공무원들조차 카톡감옥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세종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사무관 김모 씨도 직속 상사 신모 과장의 카톡이 두렵다. 신 과장은 부처 내에서도 유명한 워커홀릭이다. 꼼꼼한 데다 성미마저 급한 탓에 "내일 끝내도 되는 일" 따위는 없다. 
 
VIP 보고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요즘 신 과장은 부쩍 더 예민하다. 그런 신 과장으로부터 날아든 "들어와라"는 내용의 카톡. 김 사무관이 다루는 자료는 보안자료가 많아 바깥에서 일 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퇴근 후 카톡이란 거의 복귀 명령이다.
 
공식적으로 야근을 하는 김 사무관의 경우 근로시간을 인정받고 관련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BYOD를 통한 사생활 침해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퇴근 후 카톡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퇴근 후 특정 단톡방의 알림을 꺼두거나 방해금지 시간대를 설정하는 것을 통해 굳이 업무 단톡방에서 나오지 않더라도 관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면서 "기술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기선 부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근로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스마트기기의 보편화는 '번아웃 증후군'과 같은 현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며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독일에서 제기되고 있는 안티스트레스법안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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