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중동건설 빨간불]③사막에서 생존하려면

  • 2015.07.27(월) 16:55

"저유가 내후년까지 지속"..멀리보고 대비해야
강점 더 키워 고부가 영역 확대해야

우리 건설사들의 외화벌이 주무대인 중동에서 날라오던 수주 낭보가 뚝 끊겼다. 올 상반기 중동 지역에서의 건설 수주는 작년 같은 기간의 4분의 1로 줄었다. 오일머니를 풀던 발주처들은 유가 하락 탓에 사업을 늦추고, 건설시장 후발주자인 중국·인도 업체들은 낮은 가격에 시공품질을 더해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2의 중동 붐'을 얘기했지만 수주 가뭄은 깊어만 가고 있다. 급격히 악화된 건설사들의 중동 수주 현황과 그 배경, 향후 사업 전망과 개선방향 등을 짚어본다.[편집자]

 

프랑스 엔지니어링·건설업체인 테크닙(Technip)은 이달 초 6000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테크닙은 육상·해상 플랜트와 설계·시공 능력을 아우르는 세계 플랜트 업계 최강자다. 그런 건설사가 전직원(3만8000명)의 15.8%에 해당하는 인력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테크닙은 작년에도 매출 107억2450만유로, 영업이익 8억2460만유로의 실적을 거뒀다. 영업이익률은 7.7%로 높아야 5% 남짓인 국내 건설사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때문에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추진 때 '모델'로 제시됐을 정도다. 이런 테크닙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한 배경은 무엇일까?

 

▲ 글로벌 플랜트 강자인 프랑스의 테크닙은 저유가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이달 초 6000명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사진: 테크닙)

 

◇ 가혹한 저유가..메말라가는 중동 건설시장

 

테크닙의 구조조정은 향후 사업에 대한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산유국과 오일 메이저들의 발주량이 줄어들자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강수가 필요했다. 티에리 필렌코(Thierry Pilenko) 테크닙 회장은 "석유·가스 산업의 둔화는 장기적이면서도 가혹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가 비용 절감과 효율화에 속도를 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저유가가 불러온 위기상황은 해외 사업에서 중동지역 비중이 높은 국내 건설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발주량 감소와 사업비 축소로 이미 현실화된 상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저유가 상황이 향후 2~3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브렌트유 기준 올해와 내년 평균 유가를 각각 배럴 당 60.5달러, 67.0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최중석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정책지원부장은 "올 하반기에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프로젝트 발주 위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2016년까지도 지금과 같은 시장 정체, 축소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지역2실장도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중동 시장은 IS 테러 확산 등 정세 불안과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이 지속될 것"이라며 "시장 규모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8조 달러를 밑돌아 정체가 예상되고, 2018년 이후 8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상승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투자은행 유가전망(자료: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2015년6월15일 국제금융센터 인용)

 

◇ "이란 특수? 또다른 저가수주 늪 될수도"

 

최근에는 이란 핵협상 타결로 국내 건설사들이 '이란 특수(特需)' 효과를 입을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이란 현지에서 사회간접자본(SOC)이나 플랜트, 건축 등 다양한 부문의 사업 재개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란 시장에서도 넘어야할 장애물이 적지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신규 프로젝트의 발주까지 연결되는 데는 1~2년의 시간이 걸릴 예정이어서 현재의 수주공백을 메우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란은 중국이 수 십년간 공을 들여온 나라라는 점에서 쉽게 넘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업체들과 EPC(설계-구매-시공)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은 서방의 경제 제재 중에도 이란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D 건설사 관계자는 "인적 네트워크에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과의 수주 경쟁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이 가속화하는 것도 문제다. 이란은 하루 352만 배럴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 6위의 원유 생산국이다. 모건스탠리는 이란이 생산 회복에 가세할 경우 향후 3년간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발주 물량 감소가 더 급격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들 국가로 이뤄진 걸프협력회의(GCC) 시장은 잇따른 프로젝트의 연기와 취소로 올해 발주량이 2012년 대비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 신기루된 '제2중동 붐'..사막서 살아남으려면?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중동지역 순방 뒤 꺼내든 '제 2의 중동 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단기 실적 위주로 수주에 나섰다가는 오히려 또다른 저가 수주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눈앞의 실적에 목말라 있더라도 수주영업에 고삐를 죄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는 한편 강점이 있는 사업 영역을 전문화하는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최석인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의 성장 극대화 전략은 기업 규모를 키우는 데는 유효했지만 수익성 악화 문제를 함께 가져왔다"며 "이제는 매출 확대보다 고부가가치 영역에서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사들과 글로벌 건설사들 간 경영성과 비교.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은 성장성은 높았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 반면 빙시, 테크닙 등은 수익성을 유지하는 성과를 보였다.(자료: 건설산업연구원)

 

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주목할 힐요가 있다. 엔지니어링분야 부가가치율은 56%로 건설업(21%)의 2.5배로 추산된다.

 

글로벌 건설사들의 이력을 봐도 그렇다. 테크닙은 스톤앤웹스터(Stone & Webster)를, 이탈리아 사이펨(Saipem)은 스남프로게티(Snamprogetti)를 인수하는 등 M&A를 통해 각각 플랜트와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역량을 확보해왔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삼성물산이 액화천연가스(LNG) 설계 업체인 영국 웨소(Whessoe)를, GS건설이 스페인 수처리 설계업체 이니마(Inima) 등을 인수한 경력이 있지만 아직까지 인수 대상은 특수분야 소형 설계업체에 한정돼 있다.

 

이와 함께 발주처와의 계약 리스크를 감소시키기 위해 프로젝트 관리(PM) 역량이 있는 유력 감리업체를 인수하는 것도 방법으로 꼽힌다. 아울러 JGC 등 일본 엔지니어링 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제휴 전략을 통해 과도한 경쟁을 피하면서도 사업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중석 부장은 "EPC 중심에서 탈피해 프로젝트 기획이나 엔지니어링, 운영·유지(O&M)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지역과 공종, 사업 방식의 다각화를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살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