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에서 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
야근은 일상이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직장 선배들과의 거친 술자리가 반복될 것 같은 그런 곳. 과거 국내 기업 다수가 그랬겠지만 그 중에서도 건설사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업계보다도 더 셌다.
시대가 변해도 건설사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시선을 바꾸기 위해 현대건설이 나섰다. 그 시작은 바로 건설업계 최초 웹드라마 제작.
사실 기업들의 웹드라마 제작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롯데홈쇼핑과 이마트 등 유통업계 뿐 아니라 정책 홍보용 웹드라마도 많다. 게다가 건설사 업무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는 내용의 웹드라마는 보기도 전부터 뻔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드라마 2회째를 보면서는 궁금한 게 생겼다. 건설현장을 소개하는 2회도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출연진이 색달랐다. 신인 배우 출신의 남녀 주인공과 함께 나오는 현장 직원 역할의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1회에서는 실제 배우와 드라마에 참여한 현대건설 직원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깊은 안목이 없어도 드라마 속 연기 등을 보면 보인다) 하지만 2회는 달랐다. '현장 업무를 소개하고 여주인공과 대화하는 저 역할은 배우야, 아님 직원이야?' 할 만큼 헷갈렸다. 다시 말해 그의 연기가 배우 못지않았다는 얘기다.
▲ 박지남 현대건설 건축 부문 대리(사진: 이명근 기자/qwe123@) |
현대건설도 자신있게 그를 소개했다. 직원 오디션 1위란다. 회사 내에서도 연기력으로 이름을 알린 박지남 대리(국내 건축사업본부)를 그가 근무하고 있는 부천성모병원 새병동 공사현장에서 만났다.
안전조끼를 착용하고 안전화를 신고 있는 그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건설사 현장직원이다. 하지만 연기와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현대건설 박지남 대리가 아니었다. 눈빛과 말투에서 연기에 대한 자신감과 욕심이 묻어난다.
박지남 대리는 "직장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다중인격)에서 3년 가까이 배우활동을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극단에서 6개 공연에 참여했고, 주로 주연을 맡았다"고 소개했다.
웹드라마 '현대건썰' 직원 오디션은 어떻게 보면 그를 위한 자리였다. 이미 박지남 대리 동기들은 '너를 위한 오디션이 만들어졌다'고 그를 독려했고, 그 역시 우여곡절 끝에 참여한 오디션에서 끼를 맘껏 뽐냈다.
박지남 대리는 "현장에 급한 일이 생겨 원래 정해졌던 오디션 날짜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아쉽긴 했지만 드라마 출연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운 좋게 담당자로부터 따로 오디션 기회를 제안 받았고, 그 자리에서 그동안 해왔던 연기를 보여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조정석 분)가 키스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과 최근 공연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아들이 엄마와 헤어지면서 슬퍼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그리고 결국 2회의 주요 배역을 따냈다.
▲ 현대건설 박지남 대리는 직원 오디션을 1위로 통과하며 웹드라마 '현대건썰' 2화에 현장 직원 박진감 대리 역할로 출연했다. 박 대리는 실제 배우인 주인공들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배우인지 직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웹드라마 현대건썰 한 장면, 출처: 유튜브) |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애초 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학교 시절 유일하게 유도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한 것이 전부다. 현대건설 입사 후 1년 동안은 회사 적응기간을 가졌다. 이후에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마침 연극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박지남 대리는 "우연찮게 본 연극을 통해 '나도 무대에 올라서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검색을 통해 부천에 있는 지금의 극단을 알게됐다"며 "처음 간 날 단원들이 독백(긴 대사를 호흡과 감정, 표정을 실어 혼자서 소화하는 것)하는 모습을 봤는데 진지하고 프로처럼 잘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첫 작품부터 주인공을 맡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주변 단원들로부터 시샘도 받았고 연기력 논란도 있었지만 매일 출퇴근 때 대사와 연기 연습을 했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쳤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박 대리가 연기로만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4년 가량 기술고시(5급)를 준비하다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입사후 첫 발령지로 서울 대림동 한림성심병원 신축 현장에서 근무한 박 대리는 현재 부천성모병원 새병동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공정과 안전, 품질 관리 등의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박 대리는 "건축공학을 전공한 만큼 구조 혹은 시공 기술사 자격증을 획득해 직원들로부터 존중받고 능력 있는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 틈틈이 공부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지남 대리는 현재 부천성모병원 새병동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그렇다고 회사 업무에만 올인(All in)하는 것은 아니다. 퇴근 이후 자신의 삶을 중요시한다. 특히 회사 분위기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딱딱하지 않고 자유로워 충분히 여가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건설사 문화 역시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박지남 대리는 "현대건썰 첫회에서 그린 회사 분위기는 실제 내가 경험한 회사와 다르지 않다"며 "선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군대건설'로 불렸던 과거 회사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회식 참여도 자유롭고 직원 개인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어 만족스럽다"고 강조했다.
그는 "쉬는 날에는 회사 업무를 생각하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며 "충분히 재충전을 해야 업무 능력도 향상되고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인터뷰를 한 당일도 그는 퇴근후 유도를 하고 집에서 개인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나이가 들어 흔히 생각하는 '아저씨 몸매'로 살기 싫다는 생각에서다. 주말에는 사내 사회인야구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지남 대리를 보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새삼 워라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워라밸은 '회사나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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