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팔아 생긴 이익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고민했을 때, 결국 답은 다시 다른 집을 사는 것이다
8.2대책과 9.13대책에서 12.16대책까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갈수록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집값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일정 기간에 그쳤다. 대출을 조이고 세금부담을 늘리는 규제만으로는 시장이 안정되기 어렵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주택 정책이 안정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주택시장에 유입되는 유동성을 분산할 수 있는 대체 투자처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면 결국 돈은 눈치를 살피다 다시 주택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이에 정부도 리츠(REIT's) 등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 육성에 나서고 있다. 부자들도 해외 부동산 간접투자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간접투자가 활성화되려면 기초자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집 대신 부동산 펀드‧리츠
12.16 대책 발표 후 집값은 상승폭을 축소하며 안정화 추세에 접어든 분위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세가 유지되고 정부가 기대했던 정책 효과(다주택자의 기존 주택 처분을 통한 시장 활성화 등)가 나타나려면 주택 이외의 대체 투자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정부가 부동산(주택)이 아닌 다른 투자처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안 투자처로 최근들어 부동산펀드나 리츠 등을 통해 부동산자산에 간접 투자하거나, 해외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해외부동산 역시 직접투자보다는 펀드나 리츠 등의 간접투자로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전문가들은 추천한다.
실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부자들의 절반 이상은 해외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투자방식은 간접투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와 해외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공모형 부동산펀드와 리츠에 대한 투자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공모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롯데리츠와 NH프라임리츠는 청약경쟁률이 각각 63대1과 317대 1을 기록하는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점은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에도 호재다.
류석재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저금리 기조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은 상업용 부동산 투자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이라며 "전통적 투자자산인 주식과 채권 대비 양호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어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규제 풀어 시장 키우자
정부도 주택시장에 쏠리는 유동성을 유인하고 경제 활성화와 국민 소득증대를 위해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 육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공모형 부동산 간접투자 활성화방안'을 발표, 그 동안 소수의 부자들이나 기업들만 참여했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일반 투자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공공시설 민간 사업자 선정 시 공모 리츠나 부동산펀드를 활용한 사업자를 우대한다. 이를 통해 역사복합개발이나 역세권, 복합환승센터 등 공공자산 개발 또는 시설 운영 시 공모형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을 통해 일반 투자자들의 참여가 가능하다.
또 공모 리츠나 부동산펀드에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5000만원 한도로 일정기간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에 대해 발생한 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추진하고, 간접투자 상품이 100% 투자하는 사모 리츠나 부동산펀드에도 재산세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간접투자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실질적인 주택시장 안정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정부가 제시한 것 이상으로 규제 장벽을 더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부동자금이 간접투자 상품으로 유인되려면 수익률이 보장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기초자산이 되는 부동산에 대해 취득세나 양도세 등 강력한 세제혜택을 제공, 지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달성해야 집 대신 간접투자 상품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리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오피스리츠 수익률은 6.4% 수준이다. 안정적인 수익률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아파트에 직접 투자해서 내는 수익률에 크게 못미친다.
이어 고 교수는 "이를 통해 시장이 성장하면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상품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몇 년 전부터 많은 부자들이 해외 부동산 간접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마땅한 상품이 없어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익명의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오피스 임대료 상한과 서민 임차인 보호제도 등은 필요하지만 간접투자 상품 수익성에 제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며 "(시장 규제와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을 육성하겠다는)정부 정책 내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는 점은 풀어야할 숙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