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전셋값 상승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자 임대차 시장에서는 4~5년 전의 전세난이 재현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대인(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넣어 봤자 이자수익이 나지 않아 반전세 혹은 월세로 전환할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임차인(세입자)들은 매달 내야하는 월세(반전세 포함)보다 목돈을 들이더라도 전세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수요는 꾸준한데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도 현 상황에선 전세보단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 전셋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다만 최근의 경제상황 등을 고려하면 가격 폭등이나 전세난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다.
◇ 저금리가 불러온 반전세
집주인들은 집값의 50~60%, 많게는 70%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전셋값)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을 노린다. 목돈인 만큼 높은 이자수익을 얻거나, 집값 상승 시기에는 갭투자 등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는 전세보증금을 통한 수익보다 매달 꼬박꼬박 현금이 들어오는 월세 수익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집주인들이 기존의 전셋집을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품귀현상이 일어났던 2015~2016년이 그랬다.
한국은행은 2015년 3월 기준금리를 2%에서 1.75%로, 같은 해 6월에는 1.5%로 낮췄다. 1년 후에는 기준금리가 1.25%까지 낮아졌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저금리에 직면하자 집주인들은 빠르게 전셋집을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별 전월세 거래량 가운데 월세 비중은 2015년 2월 42.2%에서 이듬해 1월에는 46.6%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당시 전세 중심의 임대차시장에서 월세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주택 경기가 회복되며 집값이 오름세를 지속하고, 주택 공급량도 크게 늘면서 전세시장은 다시 안정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5년 전과 유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글로벌 확산으로 대외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한국은행은 지난달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하며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까지 낮췄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현재 은행 보통예금은 제로금리, 정기예금도 이자율이 1% 수준에 불과한 반면 매달 월세를 받을 경우 적어도 4%의 수익률은 기대할 수 있다"며 "이런 이유로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 입주 물량‧경제 상황 달라
반전세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다만 5년 전과 다른 점은 지난 몇 년간 주택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진 영향으로 공급량에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입주를 앞둔 새 아파트 단지는 전셋집을 공급하는 중요한 공급처 중 하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5~2016년 서울 입주 물량은 4만7193가구, 전국 기준으로는 57만5037가구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올해와 내년 서울에서 입주가 예정된 물량은 당시와 비교해 38.1% 증가한 6만5186가구, 전국 기준으로는 1.8% 늘어난 58만5531가구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올해는 입주 물량이 일정 수준 받쳐주고 있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임대차 시장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며 "또 5년 전에는 전세가 대부분이던 시장에서 갑작스레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됐다면 지금은 일정 부분 월세 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과거 수준의 충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경제 상황도 변수다. 과거에는 세입자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반전세로의 전환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전반적인 내수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개인들의 현금흐름이 악화되면서 반전세를 받아들이기 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권대중 교수는 "이전보다 전세 매물이 줄어들 순 있지만 2015년처럼 전셋값이 폭등하거나 반전세가 확산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공급이 적더라도 수요가 이를 받쳐줘야 하는데 현재는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높은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